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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맞다고 생각한 팩트는 틀렸다

2023-02-17 (금) 신임철 한국제도경제학회 행동경제학 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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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월 내내 총기 사건 뉴스로 꽤 시끄러웠다. AP통신에 따르면 1월6일 버지니아주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여섯 살짜리 1학년 남학생이 30대 여교사에게 권총을 쏜 사건이 발생했다. 남학생은 자신을 훈계하던 교사와 언쟁을 벌이다 교사를 향해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교사는 중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지만 병원 치료 후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아울러 CNN에 의하면 1월21일 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있는 몬터레이파크의 한 댄스 교습소에서 72세의 중국계 남성이 반자동 권총을 무차별 난사해 총 11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총기 살인 후 한 쇼핑몰 인근 주차장에서 범행에 사용한 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한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이틀 후인 1월23일 오후 캘리포니아주 하프문베이 외곽에 있는 농장 두 곳에서 총기 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7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용의자인 67세의 중국계 남성 노동자는 농장 관리자가 자신에게 파손된 지게차 수리비 100달러를 지불하라고 요구하자 화가 나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심지어는 개가 사람에게 총을 쏴 사망케 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1월 21일 오전에 캔자스주 도로에서 트럭 뒷좌석에 있던 반려견이 장전된 소총을 발로 밟아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남자가 사망했다. 2018년에도 뉴멕시코주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견주가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에 의하면 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체 총기 사망 사건 중에서 자살과 살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쪽이 더 클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살인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럼 총기 살인의 비중이 정말 더 클까. 세일러 교수가 팩트 체크를 해보니 실제 비중은 정반대였다. 총기 자살의 비중이 전체 총기 사망 사건의 과반을 훌쩍 넘겨 총기 살인보다 1.3배나 더 많았다. 미국의 글로벌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도 세일러 교수의 연구와 거의 비슷했다.

왜 사람들은 팩트와 달리 총기 살인이 총기 자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할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세일러 교수는 미디어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미디어에서 총기 자살 사건보다 총기 살인 사건을 훨씬 더 자주 더 크게 다루기 때문이다. 총기 자살보다 총기 살인이 훨씬 더 자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미디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총기 살인을 더 비중 있게 다룬다. 반면 미디어에서 총기 자살 사건은 거의 다루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총기 자살의 비중을 쉽게 짐작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머릿속에 총기 자살보다 총기 살인을 훨씬 더 용이하게 떠올리는 성향을 보인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성향을 이용 가능성 편향(availability bias)이라고 부른다. 이용 가능성 편향이란 일반적인 이론, 객관적인 데이터, 통계 자료보다 최근에 발생한 주변의 구체적인 사건이나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을 떠올려 판단하려는 심리를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용 가능성 편향으로 인해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사례, 즉 머릿속에서 즉각 이용 가능한 정보들을 활용해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할 때가 많다.

최근에 발생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건이나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례인 경우 사람들은 그것의 실제 발생 확률이 매우 낮더라도 심리적으로는 발생 확률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얼마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지에 기반해 그 사건이 실제로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를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가 사람들에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건이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의 이용 가능성 편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미디어는 우리의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는 숨겨진 진실을 알리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우리의 생각을 깨어있게 한다. 반면 자극적인 기사로 우리를 이용 가능성 편향에 빠뜨려 팩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틀리게 만들 수도 있다.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 꼭 필요한 이유다.

<신임철 한국제도경제학회 행동경제학 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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