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이후 음악에 대한 열정이 어떻게 변화했는가?
▶가톨릭 의대에 입학했다. 신입생 때는 여러가지로 바빠 정신이 없었고 학교 캠퍼스가 명동 성당 안에 위치하고 있어 토요일 오후엔 커피를 마시면서 라이브 음악을 통해 피로도 풀고 재 충전할 기회를 가지기 위해 미도파 백화점 5층에 있는 미도파 살롱을 자주 방문했었다. 대개 11시 반부터 시작하여 오후 3시 반 정도 연주가 끝난다. 그곳에서 주말에는 국내 보컬팀들이 나와 노래와 연주를 하여 시간 보내기는 안성맞춤이었다.
-비틀스 등장 이후 한국에도 수많은 보컬그룹들이 등장했는데 당시 그 살롱에서는 어떤 그룹들이 출연했는가?
▶이진이 리더 보컬로 있는 ‘바보스’가 전속 밴드로 활약했고 김훈의 ‘트리퍼스’, ‘키 보이스’, ‘록 앤드 키’ 등이 주로 등장했고 그 외에도 이길봉 악단, ‘에드 포’의 리더 싱어 서정길 등이 게스트 손님으로 초대되었다. 관중은 20-30명 정도였으며 대개 아는 노래가 나오면서 모두 함께 노래하여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마 이것이 한국 떼창의 원조라고 생각한다.
-가끔 이곳에서 특별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당시 당대의 최고 인기를 누비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최동욱의 ‘세시의 다이얼’이 이곳에서 한동안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되기도 했는데 그 때 출연진은 호화스런 가수들이었다. ‘이금희’, ‘이춘희, ‘현미’ 등의 여자 가수들과 ‘유주용’, ‘위키리’, ‘남석훈’ ,’자니 리’ 등의 남자 가수들이다. 사회는 재치가 넘치는 ‘지미’가 담당했다.
-그들은 거의 모두 미 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가수들이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그들의 노래들을 즐겼다. 특히 이춘희는 그 당시 한국에서 라틴 뮤직을 전문적으로 노래하는 독보적인 존재로 부각되었으며 ‘Malaguena’를 멋지게 노래했던 기억이 난다. 이금희는 한국 최초의 여자 록가수 였고 ‘남석훈’은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알려져 있다. 혹 그들의 노래 중 기억나는 곡이 있는가?
▶이금희는 ‘Crazy Love’, ‘키다리 미스터 김’, 유주용은 ‘My Blue Heaven’,’Morgen’, ‘Kiss Me Quick, ‘The Young Ones’, ‘세시봉', 위키 리는 ‘저녁 한때의 목장 풍경’, ‘눈물을 감추고’,‘종이배’ 쟈니 리는 ‘뜨거운 안녕’, 남석훈은 ‘하운드 독’, ‘Its Now Or Never’를 노래했다.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이들의 노래들은 마치 청량 음료처럼 그들의 열정을 식혀준 것 같다.
-미도파 살롱 외에 다른 장소에서도 음악을 즐기는 것들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명동의 ‘OB’s 케빈’에서는 경양식과 음악감상을 즐기 수 있어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잘알려져 있었으며 ‘뉴 멕시코’, ‘닐바나’, ‘코스모스 살롱’ 등도 음악 애호가들이 즐겨 찾은 장소였다. 그 추억 중에 지금도 잊지못할 것은 ‘코스모스 살롱’에서 신장개업 행사용으로 그 당시 유명했던 신중현 밴드를 초청하여 오후 6시에 연주를 시작했는데 공연 시간이 너무 일러 저의 서울고 동창들만 자리에 있어 마치 우리들만의 축제가 되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 당시 어떤 전문 음악 감상실이 있었는가?
▶음악 감상실로는 이종환씨가 활약한 ‘디쉐네’, ‘카네기’, ‘세시봉’,’아카데미’, ‘르네상스’, ‘시보네’ 등이 있었고 음악 다방으로는 ‘대호’, ‘심지’ 등이 있었다. 음악 감상실은 음악 감상 뿐만아니라 만남의 장소로도 이용되기도 했다. 그 당시 친구랑 약속한다거나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제과점과 다방에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보다도 한걸음 업그레이드 된 것이 음악 감상실에서의 미팅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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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