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설 연휴였던 지난 주말, 이틀 간격으로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파크와 하프 문 베이 지역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 총 18명이 사망하고 그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부상을 입었다. 이로써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설레는 마음으로 HMart로 달려가 음식 준비를 하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우리를 이 세상에 있게 해 준 조상님들을 기리며 새해를 기념하는 날을 상처와 폭력의 날로 기억하게 되었다.
찜찜하고 이상한 마음을 달래고자 휴스턴 내 이민자 및 사회적 약자 권리 신장을 위해 일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주관하는 모임에 온라인으로 나마 참석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에서 모두들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인들을 추모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나누었다. 누군가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표현 할 언어를 찾지 못해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마음 속에 멈춰있는 것 같다고 했고, 또 다른 분은 보통 미국 미디어 내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노년의 아시안계 남성을 보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아버지 뻘 되는 사람이 같은 아시안계의 사람들을 해친 범인이라는 것에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도 했다.
나 또한 그러한 마음에 큰 공감을 표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용히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았을 때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 그 자체였다. 2년 여 전, 아틀란타 스파 총격사건 때만 해도 내가 느꼈던 충격은 감히 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처음 며칠 동안은 이런 총격사건이 아시안 커뮤니티에, 특히 아시안 여성에게 일어났다는 것 자체에 충격이었고, 그 다음은 “나였을 수도 있었어. 우리 엄마, 숙모였을 수도 있었어.” 라는 말을 하염없이 되뇌이며 내가 소유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어떤 것에 대한 상실감을 느꼈다. 그 상실감이 촉매가 되어 아시안계 미국인과 이민자들에 대한 사건 사고 뉴스가 보도 될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웠다.
2년 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부끄럽게도 총격 사건에 대한 내 마음은 놀라울 만큼이나 무뎌지고 말았다. 총격 사건을 들었던 날 저녁, 내 마음에 떠올랐던 생각은 슬픔과 분노 보다 “아 또 이런 일이” 라는 탄식이었다. 더 솔직하게는 짜증이 일었다. 즐겁게 누려야 할 설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비난할 누군가의 모습을 성급하게 머릿속에 그려내고 있었다. 지난 2년 여 동안 내 마음은 그렇게 하는 것이 충격에서 가장 쉽고 빨리 헤어 나 올 수 있고 내 정신건강을 지켜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체득한 것 만 같았다.
두 사건의 범인들이 검거 된 후 잠깐이나마 안일한 마음이 퍼진 채로 이 사건들에 반응하는 내 모습에 실망하고 또 반성했다. 물론 일일이 기억할 수 조차 없는 수 많은 총격 사건과 함께 인간의 잔인한 공격성이 매일 보도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모든 사건에 통감하고 가슴 아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작고 큰 모든 상실에는 치유가 필요하니 말이다. 오드리 로드, 벨 훅스, 또 글로리아 앤잘두아 같은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이 항상 얘기하듯, 자기 돌봄과 치유는 상처입은 현재를 벗어나 미래를 빚어 나가는 데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상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상실로 인한 상처를 기억하는 것과 함께 상실을 기억하는 방식 또한 중요하다. 사건 발생 후 지난 몇 일간 어떤 이들은 총격사건의 범인이 아시안 남자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비추기도, 아시안 커뮤니티의 문제점을 짚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이라는 말에서도 나타나듯, 아시안 커뮤니티의 문제는 미국 내에서 아시안 커뮤니티를 바라보는 혐오의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더욱이 아시안 커뮤니티의 문제는 미국의 문제임이 자명하다. 그저 어쩔 수 없이, 개개인의 원한으로 일어난 불운한 사건이 아닌, 어떻게 범인들은 그렇게 손 쉽게도 총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으며, 또한 그들은 왜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이어 낼 수 있었는지 알아내고 기억해야 한다.
절대 용서 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을 지라도 그들 또한 아시안계 이민자와 시민사회, 그리고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그들의 문제를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한다. 치유와 돌봄의 행동과 함께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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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 휴스턴대학교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