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파식적] 푸에블로호의 교훈

2023-01-23 (월) 문성진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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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미국 연방법원은 북한이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23억 달러(약 2조8,500억 원)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건 발생 반세기가 지나서야 북한의 무력 도발과 반인륜적 고문에 대한 응징이 선언적 수준에서나마 취해진 것이다.

푸에블로호 사건은 미국에 뼈아픈 일이었다. 미 해군 정보수집함인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23일 오전 11시30분쯤 북한 원산 앞바다 공해상에서 업무 수행 중이었다. 이날 정오쯤 “정지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는 북한 초계정의 무전 경고에 “공해상에 있다”며 거부하자 북한군은 푸에블로호를 나포했고 이 과정에서 미군 1명이 죽었다. 이후 미국은 대규모 응징을 시사했으나 북한은 “(미국이)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하면서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미국이 승무원을 구하기 위해 북한과 비밀 협상을 시작했고 그해 12월23일에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통해 승무원 82명과 유해 1구가 송환됐다. 당시 북한은 승무원들을 학대·고문해 그들이 북한의 영해를 침범하였음을 시인·사과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북한이 푸에블로호 나포 55주년을 맞아 월간지 ‘조선’ 최신 호에 실린 박인호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의 기고문을 통해 “55년 전의 교훈을 잊지 말라”고 미국에 큰소리쳤다. 나포 작전에 참가했던 박 강사는 “(푸에블로호의 나포는) 침략자들에 대한 응당한 징벌이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푸에블로호 사건의 교훈을 가다듬으면서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 당시 북한은 푸에블로호 납치 이틀 전 무장 군인을 청와대로 보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제거하려 했다. 피랍 사건이 매듭된 후에도 1969년 4월에 미국 해군 소속 EC-121기를 동해상에서 격추시켜 승무원 31명을 몰살시키는 등 더 대담한 도발에 나섰다. 55년이 지난 지금 북한 김정은 정권의 호전성은 더 지독하다. 서울 상공에 대량 살상 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무인기를 침투시켰고 ‘핵탄 보유량의 기하급수적 증산’을 선언했다.

<문성진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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