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아프리카 미래재단 미주 법인 후원자들을 대표하여 잠비아를 다녀왔다. 집중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아프리카 남쪽에 위치한 나라, 잠비아의 제라 보건대학을 방문하여 협력으로 지어진 교실 건물 3동과 강당 준공식, 학생들을 위한 표창식, 장학금 전달식에 참석하여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제라’ 라는 말은 잠비아 말로 ‘씨앗’이란 뜻이었다. 씨는 뿌리는 자가 있어야 되는데 허일봉, 전미령 님 부부께서 30년 가까이 피와 땀으로 뿌리신 씨앗이 치소모(소망) 병원과 제라(씨앗) 보건대학으로 서서히 열매를 맺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제정된 잠비아의 국기는 빨강(자유를 뜻함), 검정(국민), 귤색(풍부한 광물), 초록색(천연자원)을 나타내고, 한쪽에 있는 독수리는 자유 및 고난을 이겨내는 국민의 능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잠비아의 구리 생산은 세계 2위일 만큼 풍부하다. 이번에 방문한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 있는 제라 보건 대학은 간호사, 의료기계 기술자, 준 의사에 해당되는 임상간호사를 양성하는 기관이다. 의료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라에서 젊은이들이 꿈을 가지고 의료공부 한다는 것은 미래의 희망이다. 제라 보건대학의 로고인 씨앗도 국기의 4가지 색깔처럼 희망을 상징하고 있었지만 젊은이들의 교육 여건이 쉽지 않은 것이 잠비아의 현실이다. 제라 보건대학 로고인 씨앗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씨앗 크기는 먼지만큼 작은 난초 씨에서부터 농구공만큼 큰 바다야자까지 매우 다양하다. 씨앗은 보통 배와 배젖, 씨껍질로 이루어져 있고, 씨앗의 배는 싹이 터서 자라면 잎, 줄기, 뿌리가 될 부분이며 배젖은 배가 싹터서 자랄 때까지 사용할 수 있는 영양분이 저장되어 있다.
인류 역사를 바꾸어 놓은 것은 아주 작은 씨앗들이었다. 밀, 쌀, 감자, 목화, 고무, 옥수수를 꼽을 수 있겠다. 문명의 발달의 시작을 알린 씨는 밀이었다, 농사를 짓기 전에 사람들은 열매나 풀을 먹거나 동물을 사냥하여 먹고 살다가 밀을 키워 먹기 시작하면서 한곳에 머물러 살게 되었다. 바로 문명의 4대 발상지이다. 그 후에 식량난에 획기적인 변화를 준 것은 쌀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주식으로 애용하는 곡물이 바로 쌀인데 벼는 밀보다 수확량이 10배 정도 많다. 한국에서는 약 4,000년 전부터 벼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살린 것은 감자이다. 유럽은 오랫동안 밀로 만든 빵을 주식으로 먹다가, 16세기 무렵,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오면서 감자를 들여와 선보였어요. 처음에 못생기고 퍽퍽한 감자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춥고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고 밀보다 수확량이 3배나 많은 감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딱 맞는 식량이었다. 18세기에는 산업혁명이 일어나 유럽 전 지역에 대량생산을 할 수 있게 된 공장이 들어섰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공장에서 일을 할 때 값싸고 영양가 높은 감자는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훌륭한 식사거리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산업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다.
고려 말, 문익점이 중국의 사신으로 갔다가 붓 뚜껑에다 몰래 한반도에 들여온 목화로 만든 무명옷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아주 따뜻했기에 의류 문화에 큰 변화를 주었다. 미국에서는 목화로 인한 노예제도 때문에 커다란 남북 전쟁이 일어나 4년 동안 내전을 치루기도 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세계는 농업 중심에서 공업 중심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무는 주로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의 껍질에서 나오는 액체를 굳혀 만든다. 고무는 탄력이 강하고 물이나 가스를 통과시키지 않아서 생활용품이나 공업용품으로 쓰인다. 콜럼버스가 두 번째 신대륙 항해를 마치고 올 때 고무나무 씨앗을 들여왔고 18세기에 영국의 화학자 조셉 프리스틀리가 고무를 지우개로 만들어 그 가치를 알렸다. 그 뒤로 고무 제품의 개발이 이어졌는데, 그 중 고무 타이어는 교통과 물류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곡물은 바로 옥수수이다. 옥수수는 그냥 먹어도 맛있고 옥수수기름은 식용유로, 옥수수 가루는 식자재로 두루 쓰인다. 가축 사료용으로 옥수수는 가장 많이 사용된다.
몇 백 년 된 씨앗에서도 싹이 난 소식이 있었던 것처럼 생명력은 강인하지만 씨앗의 배는 배젖을 먹고 자라야만 한다. 영양분이 되어줄 희생이 있어야만 싹이 트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작은 한 알의 씨가 자라 새들이 깃들이는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생명에 영양분이 필요하다.
잠비아에 뿌려진 작은 씨앗이 많은 열매 맺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꺼이 배젖의 역할을 감당할 분들이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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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