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모를 당한 러시아는 글로벌 플레이어(global player)에서 가장 위험한 깡패국가로 전락,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과 전 세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싱크 탱크 유라시아그룹이 '2023년 세계 10대 지정학적 리스크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비롯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렇지만 앞으로 수 년, 어쩌면 수 십 년에 걸쳐 전 세계적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나인틴포티파이브지의 지적이다.
한반도는 거대 유라시아대륙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지만 그 반대편,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여파는 한반도에도 몰려들어 한국의 안보환경, 더 나아가 동북아 정세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진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결말을 아직 알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러나 유럽 중심으로 볼 때 이미 상당한 지정학적 변화를 불러왔다.
발트 3국에서 우크라이나,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로 이어지는 제 2의 냉전 전선이 형성, 강화되면서 육로를 통한 러시아의 서부전선 진출은 사실상 봉쇄됐다. 스웨덴, 핀란드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함으로써 발트 해는 나토의 내해가 됐다. 흑해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무르만스크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의 북극기지도 나토의 감시망에 놓여 있다.
러시아는 그러면 그대로 주저앉고 말까. 아니, 태평양방향으로 시선을 돌려 군사적, 전략적 재편성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과정에서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하는 것은 ‘수퍼 사이즈 깡패국가’ 러시아가 또 다른 깡패국가 북한과 야합을 하는 경우다. 이는 당장은 아니지만(러시아로서도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하니까) 머지않아 북한의 재래 전력은 물론, 핵전력의 대폭적인 증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핵 공격 위협은 한 가지 엄중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얼마나 많은 핵탄두를 보유했냐가 열강의 관계 정립에 기본 토대가 된다는 잔인한 사실이다.’ 포린 폴리시의 보도다.
푸틴의 핵위협 보도가 나오자 이는 단순한 으름장에 불과하다는 논평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바이든과 백악관 안보 팀은 이를 가볍게 보지 않았다,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사실 핵은 상대적으로 열세인 쪽이 군사적 평형을 이루는 무기다. 1차 냉전시절 나토는 100개 사단을 전진 배치시킨 소련에 군사적으로 열세였다. 그 열세를 상쇄한 것은 수백기의 미국의 전술 핵탄두 유럽전선 배치다. 바이든 팀은 이 냉전시절의 교훈을 잊지 않고 무기 공급만 단계적으로 강화하면서 미군병력 투입 가능성을 전쟁초기부터 차단했다.
푸틴의 잇단 핵 공격 위협, 이에 반한 미국의 조심스런 대응.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 이 양상은 한반도의 핵전력 평형상태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관측이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직후 핵탄두 1,700여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70기 이상을 보유한 핵보유국이었다. 그러나 핵보유국인 미국, 영국과 러시아가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를 채택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약속하자 핵무기를 포기했다.
그 우크라이나를 핵보유국 러시아가 침공함으로써 이른바 비확산체제 자체가 흔들리게 됐다.
동시에 흔들리고 있는 것은 미국의 핵우산(확장억제)공약이다, 대만의 예를 들어보자. 중국의 침공 사태가 마침내 벌어졌다. 전황은 시시각각 불리해지고 있다. 대만이 기다리는 것은 미 지상군의 개입이다. 그런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란 게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의 단언이다.
관련해 소환되고 있는 것은 50년대 프랑스의 드골이 케네디에게 던진 질문이다. ‘미국은 파리를 보호하기 위해 뉴욕을 포기 할 수 있는가’하는. 러시아, 중국은 말 할 것도 없다. 북한도 미국 대도시 2~3곳을 동시에 핵 타격할 다탄두 ICBM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런 정황에서 미국은 자국 국민 수백만 명이 희생될 위험을 감수하고 동맹국에게 핵우산을 제공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대만에서, 일본에서, 한국에서 새삼 번져가고 있는 합리적 의문이다. 거기에 하나 더. 러시아의 잇단 핵 공격위협은 전술핵무기의 실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런데다가 핵 공격위협은 중국 등 권위주의 독재세력의 이웃 비핵보유국을 타깃으로 한 상용의 협박무기가 되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동아시아는 핵무장화 될 것인가’- 미국의 군사·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지가 던진 질문이다. 답은 ‘아마도 그럴 것’으로 기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는 파키스탄. 북한 등의 핵무기개발을 사실상 적극 지원해온 중국으로서는 악몽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북한 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우리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다. ‘북핵 위협이 더 심각해질 경우’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한국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을 공개 언급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극히 이례적이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하나. 미국 압박용인가, 북한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준엄한 경고인가. 그 해석이 어찌됐든 ‘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다’는 대한민국의 결연한 의지(국민 70%이상 지지)의 표명이자 동아시아 민주국들의 핵무장 현실화, 그 신호로 보여 진다.
<
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