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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너무 따지지 맙시다

2022-12-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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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종합 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다. 받는 선물이 다양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크리스마스에는 여러 요소가 섞여 있다는 뜻이다. 종교와 세속,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기독교와 이교도 문화 등이 혼재돼 있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의 ‘진짜’ 의미를 강조한다면 무엇이 ‘진짜’인지 가려봐야 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크리스마스 트리-. 1800년대 초 미국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었을까. 뉴욕 주민들의 일상 생활을 연구한 책 ‘한 80대의 회상(Reminiscences of an Octogenarian)’ 에는 1830년 대 초 뉴욕에서 소년기를 보낸 한 뉴요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때 브루클린에서 성탄 장식을 본다는 것은 희귀했다. 한 독일계 가정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돼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구경을 갔다. 때마침 겨울 폭풍으로 심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 집 창 밖에서 성탄 장식을 들여다보느라 옷이 온통 다 젖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독일에서 생겨 퍼져 나갔다고 비교문화 전문가들은 말한다. 1790년대 말 상록수에 초와 장식을 단 성탄 트리가 처음 독일의 마을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트리에 불을 밝힌 것은 기독교와는 무관했다.

동지가 있는 이 무렵은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때. 해를 불러들이기 위해 밖에 나무를 쌓아 놓고 큰 장작 모닥불(bonfire)을 피워 올리는 풍습이 유럽에 있었다. 해가 잘 찾아올 수 있도록 불을 피워 집으로 오는 어두운 길을 밝힌다는 의미였다. 늑대를 길들여 집에 개로 들여 놓은 것처럼 야외 장작불을 순치시켜 집으로 끌어 들인 게 트리의 촛불 장식이었다고 한다. 이교도의 민간 풍습이었다.

겨울 불놀이 풍습은 북유럽뿐 아니라 한국에도 있었다. 정월 대보름 달집 태우기와 쥐불 놀이가 곧 그것이다. 일년에 한 번 아이들에게 불놀이가 허용된 날이기도 하다. 달집을 태우고 논둑과 밭둑에 쥐불을 놓음으로써 쥐를 쫓고, 마른 풀 속의 해충과 알을 없앤다는 뜻이 있었다. 재는 거름으로 좋았다. 목적은 다르지만 불의 힘을 이용하려는 민간 풍습은 어디나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양말을 매다는 것은 영국산 풍습이라고 한다. 벽 난로가 있는 벽면 등에 매달다가 트리가 생기자 자리를 옮겨왔다. 트리 밑에 선물을 교환하기 위해 식구들의 선물을 놓아두기 시작한 것은 중산층이 등장하면서라고 한다. 신분의 차이가 분명하던 계급 사회와는 다른 평등주의의 산물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비교문화 전문가들은 전한다.

유럽의 이런 크리스마스 풍습은 19세기 들어 미국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트리는 1830년대 처음 미국에 수입됐다고 본다. 1870년에 크리스마스는 새해 첫날, 독립기념일, 땡스기빙 데이와 함께 4대 연방 공휴일로 지정됐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백악관에 처음 등장한 것은 이보다 뒤인 1889년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본래의 뜻에서 벗어나 점점 세속화되고 상업화되어 가고 있는 비난은 매번 제기된다. 더 영적인 방법으로 예수 탄생을 기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반박이 있다. 수 세기 동안 유럽에서는 종교 제례로 예수 탄생을 기념했으나 오늘날 세계 각국에 퍼진 크리스마스는 다양한 문화의 복합체인 것이다.

따지고 들면 우선 교회마다 설치돼 있을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장식 전구부터 걷어 내야 한다. 트리에 불을 밝히는 것은 태양을 맞으려는 이교도의 풍습에서 온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너무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크리스마스가 됐으면 한다. 평소 미처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많은 이들에게 또 한 해를 살아 내시느라 수고하셨다는 사랑의 인사를 나누는 때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축복, 사랑, 구원, 감사, 나눔 등 모처럼 긍정 에너지들이 잔뜩 든 세계인의 문화현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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