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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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고 외양간 제대로 고쳐야

2022-12-15 (목)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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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2주만에 상하 양원을 통과하고 발효된 지 넉 달이 다 돼가고 있다. IRA가 이처럼 전격적으로 도입될 것이라고는 어느 나라도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 정부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정부 고위급 인사와 대화 채널을 가동하고 유럽과의 공조 방안을 모색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해왔지만 아직까지는 법안 개정은 물론 어떠한 유예 조치도 얻어내지 못한 상태다. 현재 미 의회에는 전기차 세액공제 요건을 3년간 유예하는 내용이 담긴 IRA 개정안이 상·하원에 각각 발의돼있다. 그러나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에서 절반이 넘는 51석을 확보했고, 새로운 의회의 임기 시작을 앞둔 ‘레임덕 세션’에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올해 안에 IRA 개정안 통과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IRA가 미국에서 제조되지 않거나 중국산 광물·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에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국내 언론에서는 그로 인한 현대차·기아 피해 가능성이 중점적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IRA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IRA의 전체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IRA는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국민의 생활 안정화’ 도모를 명분으로 추진됐다. IRA의 3대 핵심 내용은 약값 한도 설정을 통한 의료 보장 확대, 기후변화에 대응한 청정에너지 개발, 그리고 이를 위한 증세이다. 이 중 ‘청정에너지’ 부문에는 에너지 안보와 미국 내 생산 지원을 위해 태양광 패널·배터리 및 중요 광물 가공의 리쇼어링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이 망라돼있다.

‘조세’ 분야는 조세법의 공정화와 재정 적자 감축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초대형 기업에 15%의 ‘대체 최저법인세’를 부과하고 기업의 자사주 매입에 1%를 과세할 예정이다. 이러한 세제 개편과 처방약 가격 정책 개혁을 통해 재정수입을 7,370억 달러 확충하고, 이 중 4,370억 달러를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3,690억 달러), 건강보험개혁법 확장(640억 달러)에 투자할 계획이다. IRA가 계획대로 집행된다면 미국은 이를 통해 재정 적자를 3,000억 달러 줄일 수 있다. 태양광을 포함한 청정에너지 분야 지원이 IRA 지출의 80%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 산업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명확해 보인다.


지금까지 IRA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단기적인 피해 최소화에만 집중돼있다. 당장 내년 1월1일부터 7,500달러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전기차가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고 리튬 등 핵심광물을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최소 40% 이상 조달해야하며 배터리 부품도 절반 이상을 북미산으로 채워야한다. 또 광물 조건은 2027년 80%, 배터리 부품 조건은 2029년 100%로 상향 조정되기 때문에 IRA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사실상 ‘미국 내 생산’이 필수조건이 됐다.

미국 재무부가 IRA와 관련해 의견 수렴 절차를 걸쳐 올해 말께 시행 규정을 발표할 예정이기는 하지만 내년 세액공제는 내년 말까지만 준비가 되면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상업용 차량을 예외로 하는 방안을 포함해 우리 의견이 반영되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표단을 파견해 사태를 수습하는 단기적 대응만으로는 유사한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IRA가 갑작스럽게 진행되기는 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정책의 일환으로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뜬금없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7월 통과된 ‘반도체법’ 역시 미국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포함하고 있고, 바이든 대통령이 9월 서명한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도 미국 내 제조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미국과의 협상이 정부 간 협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인식하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웃리치를 해나가야 한다. 한미 양국 모두 자국 내의 이해관계자들과 대내 협상을 병행해서 진행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대외 협상의 결과가 국내적으로 수용 가능한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피해를 호소하는 것보다는 미국의 피해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튼튼한 기둥과 바람막이가 제대로 갖춰진 외양간을 지어야 한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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