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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칼럼] ‘우울증’ 대표와 ‘야누스’ 야당의 운명

2022-12-08 (목) 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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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요즘 ‘우울증’에 빠졌다. 대장동 의혹 등 끝없는 사법 리스크로 밤잠을 설쳐야하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며칠 전 유튜브 방송에 나와 “요즘 상황이 워낙 안 좋다. 우울증에 걸린 그런 상태”라고 고백했다.

사실 이 대표의 심리는 공황 상태에 가깝다.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등 최측근이 잇따라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됨으로써 검찰의 칼날이 이 대표 턱밑까지 왔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가을 “측근이라면 정진상·김용 정도는 돼야하지 않느냐”고 실토한 데 대해 후회할 것이다. 그는 최근 검찰 수사를 겨냥해 “조작의 칼날을 아무리 휘둘러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진짜 마음 상태는 불안이 가중돼 ‘나 떨고 있니’로 봐야할 것이다.

당 사령탑의 리더십이 실종된 상태에서 당이 정상 가동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169석을 가진 민주당은 역대 제1야당 가운데 몸집이 가장 크다. 그러나 30%대 지지율에 고착화돼있고 외연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견제 및 대안 제시라는 야당의 본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로마 신화에 나오는 두 얼굴을 가진 신을 빗대 ‘야누스 민주당’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실제로 민주당은 ‘두 얼굴’을 가진 정당이다.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종종 공당의 기능을 수행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민주당 의원 6명이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권 퇴진”을 외친 것은 궤도 이탈의 대표적 사례다. 국회의원이 취임한 지 6개월여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을 상대로 물러나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상은 아니다. “내란 선동” “대선 불복” 등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의 당직자들이 검찰 수사를 맹비난하면서 이 대표 ‘방탄’에 올인하는 것도 상식에서 벗어난 행태다.

민주당은 압도적 과반 의석의 힘으로 새 정부가 제출한 법안과 예산안에 브레이크를 걸어왔다. 몽니를 부리면서 국정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와 예산안 통과 등의 패키지 여야 합의를 전격 도출한 것은 뜻밖이다. 민주당은 정상과 비정상, 상식과 몰상식의 경계선에 서 있다.

우리 정치가 정상화하려면 거대 야당이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제 기능 복원은커녕 당 존립 자체를 우려해야하는 위기를 맞았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민주당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면서 “이러다가는 민주당이 없어진다”고 걱정했다.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수렁에 빠진 민주당의 분열 여부이다. 한 전문가는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가 증폭되며 원심력이 작용해 야권은 재편되면서 분열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점쳤다. 국회에서 이 대표 체포 동의안을 처리할 경우 민주당 균열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정치 평론가는 “이 대표 사법 처리가 본격 진행되면 당권의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야권의 분열로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만일 이 대표가 구속될 경우 민주당의 뿌리 세력이 당의 존속을 위해 주류 교체를 시도하되 선거 전략 차원에서 ‘야당 탄압론’을 방패로 꺼낼 것이라는 얘기다. 이 경우 이낙연·정세균 전 국무총리 외에도 김부겸 전 총리, 김동연 경기지사, 박용진 의원 등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처리 여부는 민주당의 운명을 가르는 최대 변수이다. 검찰은 이 대표의 금품 수수 여부뿐 아니라 성남시장 재직 시절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 현 단계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각종 의혹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과 대비된다.눈을 돌려 우리 경제를 보면 내년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데도 노동계가 잇달아 ‘동투(冬鬪)’의 깃발을 쳐들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한은 24일 “서울 과녁” 운운하면서 대남 핵·미사일 위협 공세를 폈다. ‘우물 안 싸움’만 벌이는 우리 정치의 제 길 찾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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