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딸네 집에 머무는 동안 2층에 있는 방을 오르내리는 일이 제일 조심스러운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지하실까지도 단숨에 달음박질 하고 다니는 걸 부러움 섞인 눈으로 쳐다보면서 ‘아, 내가 늙어가고 있구나.’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올라가는 동작은 난간을 붙잡고 차분하게 올라가면 되었으나 내려 갈 때는 머리와 실제 동작에 도무지 균형이 안 잡혔는데 마지막 계단에서는 더 그랬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황간으로 피난 가있던 시절 중학교 20리 길을 통학하며 단련된 걸음걸이를 자랑했고 젊었을 때 방송국 산악회에 들어가 서울 근교 웬만한 산은 다 등반했던 ‘라떼’의 추억도 있었다. 그러나 평지에서는 등교시간에 늦지 않으려 남보다 빨리 걷는 것에만 열심을 다 했고 등산을 할 때는 정상에 오른 성취감에만 마음을 쏟았던 것이 전부였다.
요즘 친구들 만나면 건강에 관한 화제가 대부분인 가운데 낙상 이야기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실제로 노인층의 질환 원인에 낙상으로 인한 후유증이 상당하다는 의학계 발표도 있었다.
한 해가 저무는 길목이다. 대형사고가 늘 이맘때 자주 있었던 일을 기억하며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일에서나 남은 인생길의 여정에서 쉽게 넘어지지 않는 지혜는 무엇인지 챙겨볼 일이다.
정치인들에게도 올라 갈 때보다 내려 갈 때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경구가 있다. 임기를 끝내가는 권력자들이 막판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흔히 있는데 임기 후반기에 자칫 방심하거나 오만해졌을 때 그러기가 쉽다. 그런데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사에서 매우 특이한 경우다. 남들은 임기 종료 7개월을 남겨놓고 벌이는 현상들을 임기 초반 7개월 안에 너무 많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 축구 열기로 잠시 가려지기는 했으나 광화문 광장을 덮었던 젊은이들의 함성에 이어 미국에서도 크고 작은 규모로 ‘윤석열 퇴진’ 목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 주변에서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가속화되고 있다. 사람한테 낙상이나 뇌졸중 같은 큰 이상이 생길 때는 직전에 꼭 무슨 징조가 보이고 지진이 발생하거나 쓰나미가 일어날 때도 틀림없이 전조 현상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대니얼 지블렛 교수는 그의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합법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독재자로 변모하는 네가지의 경고 신호를 지적한다. 그 첫째가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둘째 정치경쟁자에 대한 무한 배제, 셋째 야당 성향의 언론 탄압, 네번째는 정치적 폭력주의로의 선회 등을 꼽고 있는데 미국의 트럼프 시대를 분석한 글이지만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 행태와 놀랍게도 흡사하다.
본인의 막말 논란과 협치 포기, 대형 참사의 책임회피에서 비롯된 일들인데도 오히려 일부 지지층을 제외한 전 국민을 상대로 전쟁 선포를 하듯 강경 발언만 일삼아 극도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중국 속담에 ‘종선 여등, 종악 여붕’이란 말이 있다. 선을 쫓는 일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고 악을 쫓는 것은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악을 가까이 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