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벗다’라는 말은 몇 가지 다른 의미들을 담고 있다. 첫째는 가장 단순한 의미의 옷 벗기. 옷을 갈아입기 위해 혹은 샤워를 하기 위해 우리는 매일 옷을 벗는다. 개구쟁이 키우는 엄마는 매일 저녁 놀이터에서 잔뜩 흙투성이가 된 아이의 옷을 홀랑 벗기고 몸을 씻어주는 것이 일과이다.
둘째, 관직에서 물러날 때 우리는 옷을 벗는다는 표현을 쓴다. 경찰서장이 부패에 연루돼 옷을 벗기도 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가 옷을 벗을 각오로 외압에 굴하지 않고 불의에 맞서 싸우기도 한다.
셋째는 감성적이고 에로틱한 의미의 옷 벗기.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김광균, ‘설야’ 중> 같은 표현이다. 시인은 사락사락 소리가 나는 듯 안 나는 듯 가볍게 내리는 눈을 보며, 들으며, 아련한 추억에 잠긴다.
그리고 이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옷 벗기가 있다. 뉴욕의 사진작가이자 설치예술가인 스펜서 튜닉은 공공장소에서 수백 수천명의 군중이 옷을 벗고 대오를 짓는 설치작업들로 유명하다. 이 시대에 중요한 가치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고취를 위해 그는 사람들이 옷을 벗고 맨몸으로 당당하게 한마음 한뜻이 되는 실험들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아 전국의 샤핑몰이 붐볐던 지난달 26일, 호주의 한 해변에는 동틀 무렵 2,500명의 벌거벗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반구인 호주에서 이때는 여름이 막 시작되는 시기. 작열하는 태양의 계절에 피부 건강을 생각하자는 취지로 호주는 11월 21일부터 27일까지 한주를 전국 피부암 인식의 주간으로 삼고 있다.
튜닉의 이번 작업의 주제는 피부암으로 인한 안타까운 희생. 호주에서는 매년 2,500명이 피부암으로 사망하고 있다. 튜닉은 호주의 피부암 계몽 자선단체와 손잡고 2,500명의 벗은 몸들로 피부암의 위험을 경고하는 설치작업을 추진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벌거벗고 동참할 사람이 얼마나 되랴” 싶지만 희망자들은 넘쳐났다.
“피부암을 위해 옷을 벗으라”는 프로젝트에 참가 희망자들이 한 일은 먼저 온라인 신청. 이어 소셜미디어를 통해 신청 사실을 널리 알림으로써 피부암 예방을 위한 후원을 이끌어내자는 취지였다. 다음은 옷 벗기. 대의를 위해 과감한 도전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끌자는 것이다. 마지막 한 일은 전국 피부암 계몽주간 동안 관련 사진들로 소셜미디어를 도배함으로써 사람들이 피부암 예방을 위한 기부에 적극 나서도록 독려하기.
그렇게 함으로써 더 이상은 피부암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일이 없게 하자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옷을 벗었다. 가족이 피부암을 앓고 있거나 희생된 사람들이 특히 많이 참가했다.
누드는 표현의 자유의 한 방식이라고 믿는 튜닉이 이제까지 공공장소에서 진행한 누드 설치 작업은 180건 정도. 주제는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 높이기, 동성애자 차별이나 피부색에 따른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 등.
미국에서는 튜닉이 설치작업을 하기가 어렵다.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공공장소에서의 누드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난 2016년 그는 클리블랜드에서 여성들의 나체 설치작업을 이끌어냈다. 당시 공화당 전국대회장 맞은편에서 100명의 여성들은 옷을 벗고 큰 거울로 몸의 가운데를 가린 채 포즈를 취했다. 공화당이 도널드 트럼프를 대선후보로 지명하는 데 대한 항거의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