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일 중의 한 부분은 시니어들의 메디케어를 상담하고 필요한 플랜을 함께 정해서 준비해드리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65세를 훌쩍 넘긴 어르신들과의 만남이 잦아 약속에 맞추어 표정, 말도 더욱 공손히 준비하고, 옷매무새도 조심스레 챙기려 한다.
이렇게 저분들과 이어져온 만남은 더 이상 연로함이 앞서는 시니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귀한 선물이다. 65세는 완전 이팔청춘이고 더 높은 연령이라 하더라도 나의 기준으로는 그 연세일 수 없는 분들이 과반수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메디케어 세미나 강사로 초청받아 어느 교회에 들어섰을 때 모여 앉은 교실에서 들려오는 그분들의 수다는 참새들의 수다였고, 쾌활한 웃음소리는 수학여행 때 기차 안에서 신나게 떠들던 소년, 소녀들임에 분명했다. 세미나 중 간단한 퀴즈를 내기라도 하면 저요! 저요! 하며 손을 번쩍 드는 저분들은 그 시절 교실의 책상에 앉아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날의 시니어 교실은 환갑을 맞이하면서 젊음과 작별하는 게 아닌가 싶어 조금은 우울했던 나에게 확실한 답을 얻게 해준 귀중한 만남이었다.
이렇게 시니어 시대를 멋지게 사시는 언니, 오라버니들과의 만남으로 얻는 에너지는 시너지 효과 이상이다. 오늘 만난 손님도 78세이신데 헤어지면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주를 데리러 가야한다고 하시며 멋지게 차를 몰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한참 동생인 내가 이러면 안되지! 하며 피곤해 축 처진 어깨를 부쩍 치켜들도록 에너지를 주신 고마운 분이다.
대학시절 김옥길 총장께서 은퇴하시며 강단에 서신 마지막 날에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손자들이 할머니! 할머니! 하고 부르니 세워놓으시고 땟찌! 앞으로는 할머니가 아니라 ‘할’은 빼고 ‘머니’라고 불러라 하셨는데 그 이후로 당신은 이십년이 젊어지셨다는 말씀에 대강당에 모인 학생들이 까르르 뒤집어졌었다.
학창시절이 그리워 미국에서 대학동창 연말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유창한 영어와 예쁜 매니큐어, 반짝이는 롱 드레스의 칠팔십대 대선배님들이 흰머리 지긋한 나비넥타이 정장의 멋진 남편들과 음악에 맞추어 무대를 빛내던 그 멋짐은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아, 이제 나도 곧 시니어 반차에 들어선다. 나도 저들처럼 그리 되고 싶어 늘어가는 주름살의 한시름을 뒤로 한 채 한껏 욕심을 부려 내 안에 밝은 에너지와 용기를 마구 집어넣는다.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내가 만나는 어르신들처럼 꿈, 희망, 자신감을 결코 버리지 않음으로 나는 육신의 쪼그라듦을 능히 이겨내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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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임 / 재정설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