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법률 칼럼] 도청과 대화 녹음

2022-11-29 (화)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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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 일어난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정치 스캔들 중 하나로 꼽힌다. 5명의 요원이 닉슨 대통령 재선 캠페인 기간 중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호텔 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 도청장치를 설치하다 체포됨으로써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조사 과정에서 사건의 배후에 대통령의 측근들이 연루되었을 뿐 아니라 닉슨 본인도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밝혀져 결국 불명예스럽게 대통령 직까지 사임하게 된다.

이처럼 타인간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 도청 행위는 불법으로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중범죄로 다스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과 주별로 형량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연방법을 위반할 경우 최대 5년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한다. 또 타인간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 동일한 행위로 감청이란 것도 있는데 이는 수사나 정보기관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행하는 합법적 수사활동이라는 점에서 법적으로 도청과 구분된다.

도청이나 감청 외에, 본인이 참여한 대화에서 상대방 모르게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남편이 이혼 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자기 집에 녹음장치를 감춰놓고 아내와의 부부 대화를 몰래 녹음한다거나 직장인이 회사에서 겪는 부당한 처우에 항변하기 위해 소송 대비용으로 상관 모르게 녹음하는 케이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한국법에서는 본인도 대화 당사자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 각각 다르다. 연방과 뉴욕을 포함한 38개 주에서는 본인이 참여한 자리에서의 녹음은 위법이 아니지만, 나머지 12개 주에서는 참석자 모두에게 녹음 사실을 고지해야 하는 등 주별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런 이유 때문에 삼성에서 갤럭시 폰을 출시할 때 국내 내수용에서는 통화내용을 녹음할 수 있도록 제조하여 판매하지만 미국 등 수출용에서는 이 기능을 탑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최근 들어 스마트기기와 감시카메라 등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일반인들도 자칫하면 도청 시비에 연루될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많은 맞벌이 가정에서 보모가 아이를 잘 보고 있는지, 집안 물건을 훔쳐가지는 않는지 등을 감시하기 위해 소위 내니캠(nanny cam)을 설치하는데 이들 장비에는 육성까지 녹음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모든 주에서 자신의 집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보모나 방문자가 프라이버시를 기대할 만한 공간인 화장실이나 개인 방 등에는 설치할 수 없다. 또 카메라 설치의 목적이 자녀의 안전 문제나 재산의 도난 방지 등 타당하고 정당해야 한다. 다시 말해, 녹화나 녹음이 된 영상을 상업적 목적으로 유포한다거나 공갈과 같은 범죄에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

연방이나 뉴욕과 같이 대화 당사자라면 녹음이 허용되는 주에서는 보모나 방문자의 동의가 따로 없어도 녹음이 가능하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펜실베니아, 플로리다주 등 12개 주에서는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대화가 녹음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하기 때문에 보모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럴 경우에 대비하여 보모와 고용 계약을 맺을 때 미리 서면 동의를 받아 두면 법적 분쟁의 싹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뉴욕주와 같이 법적으로 상대방 동의가 필요없다고 하더라도 내니캠의 설치 목적이 보모가 아이를 방기하지 않고 잘 돌봐줄 것을 기대하는 취지에서라고 본다면 보모에게 미리 감시카메라가 작동 중이라는 것을 알려 양해를 구하고, 아울러 경각심을 주는 것도 실속 있고 현명한 방법으로 보인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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