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하단에 있는 시계가 2022년 11월24일 오전 1시51분에 도착했을 때, 온종일 추수감사절 잘 보내라고 인사를 보내던 지인들의 카톡 소리가 멈췄다. 평소 같으면 바로 댓글을 올렸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마음이 불편하면 몸은 늘 몇 박자 늦게 반응한다. 마음 편할 땐 기쁨이 되던 일도 그렇지 않으면 힘든 일이 되곤 한다. 똑같은 명절 이모티콘으로 여기저기 보내는 걸 못 하는 성격이다 보니 상대를 생각하며 일일이 인사말을 쓰고 마음을 전하는 게 쉽지 않았다. 더욱이 오늘처럼 슬픈 날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죄송하지만 내려놓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간절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추수감사절을 맞았으면 했다.
오늘 읽은 수많은 카톡 문자 중에 “잘 지내는 거지?”라는 말이 유독 와닿았다. 그 평범한 말이 잔뜩 웅크렸던 마음을 도닥여주었다. 너무 따뜻해서 읽고 또 읽었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게 삼켜졌다. 누군가 내게 괜찮냐고 물어봐 주길 기다렸던 모양이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오병하 회장님의 부고를 들은 후 마음이 심해로 가라앉았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어쩌면 그 이전 상에 관한 불편한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잠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열어 보여주지 못할 때처럼 답답할 때가 또 있을까. 나이를 먹어도 뒷담화를 견뎌낼 근육은 영 붙지 않는다.
침대에서 내려와 작업실로 왔다. 달랑 문 두 개 지나면 오는 길이 천리길 같았다. 내 일이면 미루거나 안 해도 그만인데, 마감 시간이 정해진 일이니 그럴 수 없었다. 마음은 급한데 일손이 안 잡혔다. 생각으로 가는 문이 잠겨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이 복잡하면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몹쓸 병이 도진 듯했다. 하필 그때 교정지를 빨리 넘기라는 독촉 문자가 왔다.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내게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내 입장이나 진실 따위엔 관심이 없고 자기 생각만 앞세우는 이기적인 사람들, 이간질에 속아 사실 여부를 확인도 하지 않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욕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에 죄 없는 그가 걸렸던 거다.
빗소리가 요란해졌다. 아까부터 의자에 몸을 기댄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눈물을 감추기 좋은 소리였다. 하늘이 함께 울어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속울음을 울어야했을 것이다. 블라인드를 열었다. 군데군데 빗물이 고인 컴컴한 골목길이 으스스하고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비가 올거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Gloomy Thursday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동짓달 초하루에 내리는 겨울비가 감사했다.
고인이 되었음에도 핸드폰에서 지우지 못하는 번호가 있다. 카톡도 이메일도 마찬가지다. 차마 보낼 수 없어서, 아직 보낼 준비가 안 돼서 그 이름자를 열어보며 안부를 전하곤한다. 회장님 번호 역시 지우지 못할 것이다. 그분은 익명의 땅에서 만난 친정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이른 아침이면 성당에 나가 내기도도 잊지 않으셨고, 하루도 빠짐없이 건강 상태와 안부를 물으셨다. 밤낮을 거꾸로 사는 나는 죄송스럽게도 오랜 세월 팔순 어르신의 아침 문안을 받으며 살았다.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지역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시며 어려운 이들을 돕고 봉사하던 그분이 달포 전 몸살을 호되게 앓으셨다. 몸이 계속 감기로 몸살로 사인을 보내고 있었는데도 맡은 일을 해내고 아내와 주위 분을 챙기셨다. 그러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중이시라는 문자를 받았다. 간에 찬 물을 뺀 후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 펜데믹 이후 병원에서 방문자 출입을 제한한다며 못 오게 하셔서 가뵙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게 기도 뿐이었다. 쾌차하여 일어나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분은 인사도 없이 먼 길을 떠나셨다.
슬픔이 얹혔다. 먹는 것마다 얹혀 계속 찬 콜라를 들이켰다. 당신이 건강한 이유 중 하나는 미지근한 물을 많이 마시는 거라며 내가 소다 마시는 걸 걱정하셨다. 회장님의 아버지 같은 잔소리가 못내 그립다.
회장님은 달라스 6·25 참전 국가유공자회 회장으로 봉사하셨다. 내가 6·25 전쟁 수기집 『집으로』를 엮을 때 원고를 주신 인연으로 알게 되었고, 그분이 존경하는 리처드 캐리 장군님과의 인연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남겨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회장님은 반듯한 분이셨다. 가족과 소외된 자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셨다. 무엇보다도 애국심이 투철하셨다. 미국에 살면서도 당신이 나고 자란 조국을 걱정하셨고, 누구보다 간절히 대한민국이 편안하고 잘 되기를 기도하셨다. 그분의 보이지 않는 노력은 아름다운 결과물을 낳기도 했다. 캐리 장군님의 91세 생신 때 회장님은 버지니아 해병대 박물관에 세워진 장진호 전투 기념비와 똑같은 모형의 상패를 선물하셨다. 8각 모양 기념비 위에는 장진군 고토리 지역에서 밝은 별이 뜬 뒤 포위망을 뚫은 것을 기념하는 ‘고토리의 별’이 올려있었다. 초신의 별이라고도 불리는 그 별은 희망을 상징하는 별이다.
그분은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분이셨다. 이제는 고토리의 별처럼 하늘의 별이 되어 그분이 사랑했던 가족과 이웃과 조국을 위해 빛을 밝히며 기도하실 것이다. 아무쪼록 무거웠던 짐 내려놓으시고 전쟁의 상흔과 육신의 아픔에서 벗어나 자유로우셨으면 좋겠다. 그분 영전에 존경과 감사와 사랑을 바친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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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