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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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의‘미국 들여다보기’(64)

2022-11-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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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표 통해 종교의 다양성 존중

매년 12월 25일 직전에는 우체국의 우편물 양이 폭증한다. 북버지니아의 메리필드에 있는 우편집중국(plant)에 업무차 가보았기에 아는데 그 어마어마한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이나 일본의 연하장이라는 것이 미국에는 없기에 성탄절 카드로 소식을 전하는 이때가 1년 중 우편물이 가장 많다. 그리고 이 시기의 카드나 우편물에는 성탄절 분위기에 맞는 우표를 붙이기도 한다.

그런데 우체국은 기독교의 성탄절과 관련된 우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교 또는 민속과 관련된 우표가 있다. 2022년 11월 현재 미국 우정국(USPS) 공식 홈페이지인 usps.com에서 소개하는 13종의 할러데이 우표(Holiday Stamps) 중에서 종교 및 민속과 관련된 것들을 살펴본다.
많은 한인들이 12월 하면 크리스마스를 떠올리지만 12월이 기독교인만의 12월은 아니다. 유태교의 하누카도 12월에 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콴자도 12월에 있다. 그뿐만 아니고 이슬람교와 힌두교에 관련된 우표도 있다.

기독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우표는 두 종류가 있는데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등장하는 그림이 들어있다. 그런데 두 우표는 분위기가 사알짝 다르다. 하나는 남미 페루의 18세기 유화인 ‘과풀로의 성모(Our Lady of Guapulo)’가 들어있는 우표인데 그림에 장미와 묵주가 들어있다. 이것은 천주교 신자를 염두에 둔 것이다. 다른 하나인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유화 ‘동정녀 마리아와 아기 구세주(Virgin Mary with the Christ Child)’는 개신교를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우체국은 크리스마스 우표에서도 천주교와 개신교 모두를 포용하고 있다. 타 종교를 배려하는 의미에서 현실에서는 인사로 ‘해피 할러데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우표에는 ‘크리스마스’라고 적혀 있다. 누가 뭐래도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이니까.


유태교의 하누카(Hanukkah)를 기념하는 우표가 두 종류 있다. 히브리어인 하누카는 ‘봉헌’이라는 뜻이다. 성전(성殿)을 수리(修리)하여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명절이라서 수전(修殿)절이라고 번역한다. 유태교 명절은 유태 고유의 달력에 따르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에서는 그 시기가 매년 달라진다. 2022년의 하누카는 12월 18일 일요일 저녁에 시작해서 12월 26일 월요일 저녁에 끝난다.

우표 중 하나는 하누카의 가장 큰 특징인 ‘메노라’라는 촛불을 그린 것이다. 모두 아홉 개인데 가운데 있는 것은 나머지 여덟 개의 초를 켜기 위한 것이다. 8일간 매일 하나씩 늘여가며 촛불을 켜서 마지막 날에는 모든 촛불을 밝히는 것이다. 모든 촛불이 켜진 그 모습을 그린 우표가 있다.
다른 하나는 하누카의 마지막 저녁에 메노라 촛불을 모두 켠 직후의 모습이다. 오른쪽에 유태인 특유의 모자를 쓴 꼬마가 있다. ‘네 머리 위에 야훼가 계시는 것을 잊지 말지어다’라는 뜻으로 ‘키파’라는 이름의 이 모자는 쓴다고 들은 적이 있다. 겸손의 다짐인 셈이다.

이슬람교의 축제인 ‘이드(Eid)’를 기념하는 우표도 있다. 이 우표에서 이드 알피트르(Eid al-Fitr)와 이드 알아드하(Eid al-Adha) 둘 모두를 표현했다. 이드 알피트르는 종교적 금식 기간인 라마단이 끝났음을 축하하는 것이고 이드 알아드하는 제물을 바치는 축제이다. 이 두 가지는 이슬람교의 중요한 축제이다.
그리고 힌두교의 축제인 디왈리(Diwali)를 기념하는 우표도 있다. 디왈리는 ‘빛의 행렬’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라고 한다. 우표에서도 기름이 담긴 작은 종지의 심지가 빛을 밝히고 있다. 디왈리는 ‘빛이 어둠을 이기고, 선이 악을 이기고, 지식이 무지를 이기다’는 것을 뜻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종교는 아니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는 콴자(Kwanzaa)라는 축제가 있다. 콴자는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어로 ‘첫 열매(first fruits)’라는 뜻이라고 한다. 1960년대에 시작한 이 축제는 12월 26일부터 1월 1일까지 7일간 이어진다. 이 기간 중에 초 일곱 개를 매일 하나씩 늘여가며 차례대로 켠다.
이를 기념하는 우표가 두 종류 있다. 하나는 아프리카풍 옷을 입은 소녀와 소년이 있는 우표인데 그들 앞에 초 일곱 개가 놓여있다. 초는 가운데에 검은색이 있고 좌우에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각 세 개씩 놓여있다. 다른 우표는 눈을 감고 콴자의 의미를 되새기는 아프리카계 여인의 옆모습이 들어있다. 이 여인 앞에도 세 가지 색깔의 초 일곱 개가 놓여있다.

7일과 일곱 개의 초는 콴자 7원칙인 단합(Unity), 자결(Self-Determination), 협동과 책임(Collective Work and Responsibility), 협력경제(Cooperative Economics), 목적(Purpose), 창의(Creativity), 신념(Faith)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리고 매년 설 즈음에는 자축인묘로 시작하는 12지신 중 그해 지신의 모습을 넣은 우표가 발행된다. 12지신을 아는 아시아 사람들을 위한 우표이다.
이렇게 우정국은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의미로 여러 가지 우표를 발행한다. 문제는 사람들이다. 사람들도 다른 종교와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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