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의 일부 중견 의원들이 트럼프의 대선 재출마에 반발하고 나선 것은 꽤나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무슬림들의 입국 금지를 제안하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겁박했을 때, 혹은 탄핵소추를 당하고,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들었을 때 이들 중 상당수가 그를 두둔하고 나섰던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들의 눈에 비친 트럼프의 진짜 잘못은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 단 하나뿐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슬럼프에 큰 변화가 올 수 있다. 한번 상상해보자. 론 디샌티스, 마이크 펜스, 마이크 폼페이오, 니키 헤일리, 래리 호건과 리즈 체니 등 오는 2024년 대선에 출마가 예상되는 후보들의 면면은 제각각이다. 트럼프는 축소된 지지기반 위에서 후보 경선을 시작하지만 곧바로 세간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 모으면서 예비선거 초반에 최다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로 떠오른다. 그 어떤 주에서도 50%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지만 공화당 강세주의 예비선거 시스템은 선두주자에게 유리하다. 트럼프는 50%선을 넘어서지 못하면서도 계속 다른 경선 후보들보다 많은 표를 가져간다. 로널드 브라운슈타인이 상기시키듯 바로 이것이 전체 투표수의 40%를 차지하는데 그친 트럼프가 공화당 유권자들 사이에 자신을 2016년 선거에 나설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각인시킨 방법이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공화당을 강하게 질책했다. 중간선거의 쟁점은 대선 불복과 낙태 두 가지로 모아졌다. 그러나 뒤늦게 트럼프에게 등을 돌린 유권자들은 대부분 뚜렷한 지지 정당이 없거나, 온건한 성향을 지닌 공화당 지지자들의 일부에 불과했다. 이들은 공화당 예선의 결과를 결정지을 유권자들이 아니다.
중간선거 결과는 트럼프와 디샌티스 사이의 맞대결에 관해 별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이번에 치러진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서 디샌티스는 인상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 초반에 디샌티스는 트럼프의 맞장 상대가 아니라 다수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것이다. 지난 10월에 실시된 뉴욕타임스/시에나 공동 여론조사는 예비선거에 참여해 투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공화당계 유권자들 가운데 거의 절반이 여전히 트럼프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동일한 조사에서 디샌티스 지지의사를 밝힌 유권자는 전체의 25% 정도였고 펜스는 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최근 몇 주 사이에 디샌티스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하더라도 2024년 대선에 도전할 경우 ‘반 트럼프’ 유권자들을 등에 업어야하는데 공화당 내부에서 반 트럼프 기치를 내걸고 출마할 도전자들은 한두 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기세를 회복한다면 많은 공화당 인사들이 다시 그의 지지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공화-텍사스)은 트럼프가 후보지명을 받는다면 “열렬히 지지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이미 자신의 자리를 예약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유권자들이 나서서 그들을 트럼프로부터 구해주기를 원한다. 아무리 보아도 이건 지도자와 추종자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모양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공화당은 도덕적 비루함에 마침표를 찍고 당 내부에 도사린 암 덩어리에 결연히 맞서야한다. 공화당 지도자들은 지지자들을 향해 트럼프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려 했던 선동가이기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버나드 칼리지의 교수인 셰리 버만은 포린 어페어즈에 실린 흥미로운 에세이에서 미국이 민주주의가 확립된 국가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있다고 지적한다. 그녀에 따르면 극단주의 노선에서 강제로 밀려난 서유럽 국가의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들은 유럽연합, 유로와 우크라이나전과 관련한 주류의 입장을 대폭 수용했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트럼프 혁명의 여파 속에 극단주의 노선을 택한 공화당은 기꺼이 그의 지시를 따랐고, 대선 결과를 부인하는 300여명을 중간선거 후보로 내세웠다.
버만은 유럽의 경우 자유 민주주의의 제도와 규범이 확실히 자리를 잡았기에 미국과 상반된 모습이 연출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당들은 책임있게 행동했고, 유럽연합과 개별 국가의 기관들은 독립성을 유지했으며 지도자들은 서슴없이 잘못된 행동을 꾸짖었다. 그 결과 권력을 장악한 스웨덴과 이탈리아의 급진 우익 정당들은 한때 그들이 요구했던 극적인 정책변화를 밀어붙일 수 없게 됐다. 버만 교수는 스웨덴과 이탈리아의 극우 정당들은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고, 그들 역시 국가를 경영하기에 충분할 만큼 진지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수사와 정책을 온건하게 다듬었다고 강조했다.
아쉽게도 유럽에 비해 훨씬 허약하고 개방적인 오늘날의 미국 정치 시스템은 예비선거와 돈, 소셜미디어와 유명인사들에 의해 정의된다. 이런 모든 것들이 트럼프와 같은 기업가 정치인이 주요 정당을 장악해 개인숭배 집단으로 바꾸어놓는 것을 가능케 해준다. (지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화당 소속 전직 대통령이나 후보 지명자들은 단 한명도 연단에 오르지 않았다. 반면 무려 여섯 명의 트럼프 패밀리 멤버들이 중 시간대에 연사로 나섰다. 유럽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버만은 “프리덤 하우스 등 민주주의 발전을 추적하는 단체들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급속히 약화되고 있는 반면 서유럽에서는 유사한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헝가리, 투르키예, 그리고 미국처럼 민주적 제도가 허약한 국가에서는 역으로 선동이 정당을 바꾼다. 이런 위협을 털어내려면 공화당 지도자들이 당 안팎의 극단주의들 제거하는데 앞장서야한다. 중간선거 이후에도 트럼프와 트럼프주의는 마술처럼 저절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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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