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다시 보고픈 영화 버킷 리스트는 20여편이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 둘씩 DVD나 여러 경로를 통해 볼 기회가 생겼지만 2021년 초까지는 여전히 4편이 남아 있었다. 그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볼 방도가 없었다. 그러던 중 그렇게 그렇게 다시 보고 싶었던 영화 ‘아가씨 손길을 부드럽게’를 유튜브를 통해 다시 보게 되었다.
다시 볼 때의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 이 영화 DVD를 구입하려고 프랑스에 몇 번 갔었고 지인을 통해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결국에는 유튜브 회사에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요청까지 했었다. 그런 후 약 1년의 세월이 지난 후 드디어 유튜브에서 이 영화를 제공했다. 왜 그토록 다시 보고픈 영화가 됐을까? 그 사연은 이러하다.
국민학교 시절 대구에 살고 있었는데 팝송을 그 시절부터 엄청 좋아했다. 그리곤 차츰 AFKN 방송(미군을 위한 방송)에 귀를 기울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해졌고 영어 공부가 매우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서울에서 살던 사촌 형이 영어 가정교사로 왔었다. 그는 책 30여권과 팝송 책을 가져왔다. 하루 2시간의 영어 공부가 끝나면 형은 팝송과 영화 얘기를 잘 해주었다. 그 형을 통해서 Elvis Presley, Paul Anka, Ricky Nelson 등을 알게 되었고 그가 가지고 온 팝송책은 모두모두 달달 외었다. 그로 통해 처음으로 접한 서구 문화는 필자에게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가 가져온 책들은 모두 읽었지만 알베르트 카뮈의 ‘이방인’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2차 세계대전을 독일 눈으로 쓴 책 ‘08/15’였다.
사촌 형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같았다. 특히 영화 이야기는 밤새워 들어도 늘 즐거웠고 그중에서도 알랑 들롱이 주연한 ‘아가씨 손길을 부드럽게’는 사춘기에 눈을 뜨기 시작한 필자에게는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그 무엇과도 같았다. 형의 구수한 말솜씨와 세세한 영화 스토리 이야기는 세상 어느 것보다 재미있었고 나를 무아지경으로 빠지게 했었다. 어린 내가 유럽의 20대 젊은이들의 사랑 스토리를 사촌 형의 해설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이해하기보다는 조금 흥미를 가졌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올드 팬들은 지금도 이 영화에 커다란 향수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 당시 국내팬들이 좋아했던 배우로는 로버트 테일러, 록 허드슨, 그레고리 펙, 캐리 그랜트 등이 있었는데 그들과 달리 신선하고 풋풋한 매력을 소유한 알랑 들롱의 출현은 모든 배우들을 압도했다. 그의 첫번째 주연 작품인 ‘사랑은 오직 한길(Christine)’에서 함께 공연한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와의 로맨스가 전 유럽을 강타하여 그의 주가는 상상 외로 치솟았고 국내에서도 그의 인기는 날로 상승했다.
‘아가씨 손길을 부드럽게’는 1960년 수입되었고 프랑스 배우인 알랑 들롱이 국내에서 두 번째 소개된 영화였다. 남녀를 불문하고 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원제는 Faibles Femmes였고 미국에서는 Women Are Weak라는 제명으로 상영되었으며 또한 Three Muderesses라고도 알려졌다. 여배우에는 Mylene Demongeot, Pascale Petti, Jacquline Sassard가 출연했다.
영화 스토리는 이렇게 전개된다. 애거시(Pascal Petti 역)는 그동안 데이트했던 남자친구인 줄리앙(알랑 들롱역)이 도대체 결혼해 줄 의사가 없는 것을 알고 기다림에 지쳐 중년의 남자와 결혼을 했다. 결혼 피로연에 초청하지 않았던 줄리앙이 나타나자 신부인 애거시는 마음이 흔들린다. 이것을 눈치챈 신부 어머니는 줄리앙에게 떠나줄 것을 요청한다. 애거시의 절친 사바나(Mylene Demontgeot 역)는 첫눈에 줄리앙에게 관심을 가져 접근한다. 이 둘은 피로연에서 나와 데이트를 즐긴다. 그리고 그들은 그후 서로 사귀게 되었다. 이미 결혼한 애거시도 여전히 줄리앙을 잊지 못한다. 둘이 데이트 도중 우연히 사바나의 친구인 헬레나(Jacquline Sassard 역)를 보게 되자 줄리앙은 이젠 헬레나가 거주하고 있는 기숙사로 찾아가 데이트를 신청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세 여자와 모두 데이트를 한 셈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다. 이 사실을 알아낸 세 여자는 공모하여 그를 죽이려고 한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코미디가 시작된다. 어설픈 살인 계획. 그리고 이어진 재판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그는 헬레나와 결혼을 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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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