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이 이번 주말로 다가왔다. 손흥민 선수는 마스크 투혼을 발휘할 것인가, 모처럼 국가대표에 승선한 이강인, 수비의 대들보 김민재는 어떤 활약을 보일까. 12년만에 16강 진출을 목표로 마지막 담금질에 들어간 한국 축구 대표팀의 현지 소식에 미주 한인들의 관심도 뜨겁다.
그런데 미국팀은? 미국이 이번 월드컵에 출전하기는 하는 것인가? 정작 미국에 살면서 미국 대표팀에 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 국적의 정체성이나 애국심을 알려면 월드컵 때 어느 팀을 응원하는지 보면 된다. 그것만큼 정확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없을 것 같다.
축구 전쟁도 불사할 정도로 한 마음, 한 뜻인 유럽이나 남미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미국의 축구팬들은 응원하는 나라가 나눠진다. 예를 들어 시민권을 따고 ‘미국인’이 되었지만 한인들은 여전히 한국팀을 응원한다. 중남미 이민자들은 더 열광적이다. 월드컵 때면 미국과 멕시코, 나라가 둘로 나눠질 정도로 미국 축구팬들은 응원팀이 갈린다.
TV 중계일정을 보니 최대 관심사인 한국과 우루과이와의 조별 예선 1차전은 추수감사절인 24일 새벽5시(이하 LA시간)로 나와 있다. 경기 결과에 따라 이날 감사의 크기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웨일스 간의 1차전은 다음 주 월요일 오전 11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경기를 보느라 무단 결근하는 직원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날인 화요일 오전 8시. 멕시코와 폴란드 전이 있다. 멕시칸 종업원이 많은 업소라면 지각이 속출할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이날 뿐 아니라 멕시코 경기가 있을 때는 별도 대책을 세워 놓는게 좋지 않을지 모르겠다.
미국 축구는 미국 축구팬들에게 인기가 높지 않다. 2년 전 조사에 의하면 미국 팬에게 가장 인기있는 프로 축구팀 1위는 FC 바로셀로나, 2위는 레알 마드리드로 나타났다. 모두 스페인 라리가에 속해 있다.
영국 프로축구 EPL 소속인 맨유, 리버풀, 첼시, 애스널 순으로 그 뒤를 이었다. 미국 프로축구 MLS중에서는 LA갤럭시가 12위로 가장 높았고, 애틀란타 유나이티드가 상위 2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2년전 땡스기빙 때 축구를 본 TV 시청자를 보면 미국 축구팬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EPL 경기 12게임과 MLS 경기가 중계된 이날 축구 시청자는 20만~75만명 정도. 그 무렵 중계된 멕시코의 엘 수퍼 클라시코, 한 경기의 미국 시청자만 250만을 기록했다.
멕시코 1부 리그인 리가 MX의 미국내 시청자는 지난 2016~2018 년 새 50% 가까이 늘었다. MLS와 EPL 시청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한다. 미국의 골수 축구팬 중에는 미국 보다 멕시코를 응원하는 인구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유니폼 판매량도 그렇다. 미국에서 멕시코 축구 대표팀 저지가 미국 남녀 대표팀을 더한 것보다 더 많이 팔렸다. 지난 2019년 미국 여자축구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멕시코 대표팀이 LA등 미 서부지역에서 경기를 할 때면 홈 관중 앞에서 하는 것과 같은 열광적인 응원 속에 그라운드를 누비게 된다. 다른 나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이런 분위기에 거부반응도 있다. 미국팀이 본선 진출에 실패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일부 후원업체가 마케팅 전략으로 ‘미국 대신 멕시코 응원’을 내세웠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축구 스타 랜던 도노반을 캠페인에 앞세웠으나 “그건 아니야”라는 반응이 나왔다. 도노반의 팀 메이트로 LA갤럭시에서 뛰었던 코비 존스도 공개 반발했다. 미국 축구의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두고 후끈한 온라인 설전도 벌어졌다.
‘미국은 하나님 아래 하나’라고 하지만 월드컵 응원에 관한 한 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인들은 안다. 각자 응원하는 팀을 열심히 응원하되 상대가 잘하면 아낌없이 박수 쳐 주는 것, 그게 축구 정서가 서로 다른 다인종 국가의 월드컵 관전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