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선거는 집권당이 지는 것이 관례다. 더군다나 올해는 40년만에 최고의 인플레에다 급증하는 범죄, 바이든의 낮은 지지율 등 악재가 수두룩해 공화당의 ‘붉은 파도’가 불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그러나 지난 8일 선거가 끝난 후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연방 상원은 민주당이 펜실베니아에서 오히려 공화당 의석을 빼앗아 오며 다수당 자리를 지켰고 하원은 공화당이 이길 것으로 보이지만 압승이 아니라 신승에 그칠 전망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일부에서는 연방 대법원의 낙태권 판결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 직전까지 여론 조사 결과는 경제가 낙태보다 제1 관심사였고 선거 1주전까지 전체적으로 공화당 지지 유권자가 민주당 쪽보다 약간이지만 더 많았다.
이런 판세를 돌린 계기로 당시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6일 뉴욕에서 한 바이든 연설을 들어야 할 것 같다. 바이든은 이날 세인트로렌스대학 집회에서 이번 중간 선거에서 “붉은 파도”가 인다면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들어갈 길을 열어줄 것이라며 “여러분 세대가 (민주주의)를 지킬 순간이 왔다”고 말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는 중간 선거를 며칠 앞두고 2024년 대선 출마를 기정 사실화하면서 플로리다 주지사 재선에 도전한 론 디샌티스를 깎아내리고 대선에 출마하면 그의 약점을 폭로하겠다며 공격했다. 아무리 대선 경쟁자라지만 선거를 앞두고 같은 공화당 후보를 비난하는 것은 트럼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두 사람의 행보는 이번 중간 선거를 바이든과 민주당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아무 근거 없이 2020년 선거를 부정으로 모는 트럼프와 이를 감싸고 도는 공화당에 대한 심판으로 바꿔놨다. 언론사 출구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는 중도라고 여기는 유권자 31% 중 민주당을 찍은 사람은 49%인 반면 공화당은 47%에 불과했다. CNN에 따르면 이 표차는 4% 포인트에 달한다. 접전지역 표차가 수 % 포인트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런 중도표의 행방이 결과를 좌우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공화당 승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던 연방 상원의원 후보 중 뉴햄프셔의 도널드 볼덕, 펜실베니아의 메흐멧 오즈, 애리조나의 블레이크 매스터스, 주지사 후보 중 펜실베니아의 더그 마스트리아노, 위스콘신의 팀 마이클스, 미시건의 튜더 딕슨이 모두 나가 떨어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렇다 할 내세울 것이라고는없이 2020년 대선이 부정 선거라는 트럼프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도널드의 졸개라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와 거리를 둔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20% 포인트라는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보다 2020년 대선 부정 선거 주창자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감을 보여주는 것은 2024년 선거를 관할하게 될 주 총무처 장관 선거 결과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의 네바다주 총무처 장관 후보였던 짐 마천트 낙선을 필두로 프럼프 주장을 지지하는 MAGA 총무처 장관 후보들은 ‘막대기를 세워놔도 공화당이면 당선된다’는 인디애나를 제외하고 모조리 탈락했다.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인 마천트는 자신이 당선되면 2024년 대선에서 반드시 트럼프가 당선되게 만들겠다며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인물들로 ‘아메리카 퍼스트’ 후보 명단을 조직했다. 이렇게 되면서 보통 때는 별 관심도 없던 총무처 장관 선거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된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2019년 파트타임 스탭 한 명뿐이던 ‘주 총무처 장관 민주당 협회’를 7명의 풀타임 조직으로 바꾸고 2,500만 달러를 모금해 맞섰다. 공화당도 차마 트럼프를 위해 부정 선거도 불사하겠다는 자들을 지원할 수는 없었던지 트럼프의 선거 부정 주장을 일축한 조지아의 브래드 라펜스퍼거를 제외하고는 일체 자금을 풀지 않았다.
그 결과 라펜스퍼거는 이번 중간 선거에서 여유있게 당선됐지만 2024년 대선에서 주요 경합주로 손꼽히는 네바다, 애리조나, 콜로라도, 미시건 주 총무처 장관 선거에 출마한 트럼프 추종자들은 모조리 퇴출됐다.
이번 선거 패배로 트럼프와 그 추종자들은 2018년 중간 선거 패배, 2020년 대선 패배, 2021년 조지아 연방 상원 보궐 선거 패배, 2022년 중간 선거 패배 등 내리 4번을 졌다.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프와 그 졸개들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림으로써 아직 민주주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
미 양대 정당의 하나면서 트럼프 주술에 걸려 있는 공화당을 하루 속히 깨어나게 하려면 트럼프라면 신물이 날 때까지 패배를 안겨주는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한 때 “너무 많이 이겨 이기는 게 지겹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말이 나오는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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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