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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야 할 ‘일광 절약 시간’

2022-11-08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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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 절약 시간’(Daylight Saving Time)을 처음 주창한 사람은 미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인 벤저민 프랭클린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건강해지고 부자가 되며 현명해진다”는 격언을 남겼고 파리에 대사로 갔을 때 ‘여름에 일찍 일어나면 양초를 아낄 수 있다’고 말한 게 전부다.

그러나 그 후에도 시간을 조절해 전기를 아낄 수 있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됐고 1908년 캐나다 온타리오의 포트 아더라는 시가 DST를 처음 시행했다. 국가로는 제1차 대전 전황이 불리해진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전기 절약 목적으로 1916년 이를 도입했고 미국도 전쟁 말기인 1918년 그 뒤를 따랐다. 그 후 아프리카와 동남아를 제외한 많은 국가가 채택했으나 그 번거로움과 무용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제는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대다수 나라는 폐기한 상태다.

DST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긴 여름 해를 이용할 수 있어 전기 등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조삼모사’의 고사를 연상케 한다. 오후에 해가 떠 있는 시간은 늘어나지만 아침은 깜깜할 때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1974년 석유 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미국은 아예 전국을 DST로 통일시키는 법을 시행했지만 몇달만에 포기해야 했다. 어둠 속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했던 학부모의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여름 해를 이용하면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는 주장도 허구로 밝혀졌다. 형광등과 전구에 들어가는 전기는 줄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에어컨을 더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큰 문제는 DST가 모든 생명체에 장착돼 있는 ‘일주 리듬’(circadian rhythm) 기제를 해쳐 건강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시간을 1년에 두번씩 인위적으로 바꾸면 수면 장애, 당뇨, 고혈압, 우울증 등 온갖 질병을 유발한다. 미시건대 연구에 따르면 DST 시행 직후 심장마비는 24%, 미 신경학회에 따르면 뇌졸중은 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DST 시행 초기 충분한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교통 사고가 증가한다는 것은 통계로 입증돼 있다.

DST 주창자들은 하루 대부분 야외에서 일을 해야 하는 농부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주장했는데 의외로 농부, 특히 낙농업자들은 이에 적극적 반대했다. 소위 ‘스탠다드 타임’으로 불리는 원 시간대는 태양이 정남에 온 시각을 낮 12시로 하고 있고 모든 생명체는 이를 존중한다. 이 리듬에 따라 젖을 생산하는 젖소들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정한 시간에 충실하기 때문에 아무리 아침 일찍 가 젖을 짜봐야 나오지 않는 것이다.

미국인들도 이제는 해마다 두번 시간 바꾸는 것이 불편할뿐 아니라 해롭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론 조사를 해보면 60% 이상이 항상 그 폐지를 원하고 있다. 가주민들도 지난 2018년 60%라는 압도적 표차로 이를 없애는 주민발의안 7을 통과시켰다. 그런데도 아직 시행이 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이를 폐지한 후 원래 시간으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일년 내내 DST를 시행할 것이냐를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발의안 7은 가주 의회에 선택권을 주었는데 일년 내내 DST를 시행하려면 2/3 찬성으로 이를 가결한 후 연방 의회에 청원서를 내 허가를 받아야 한다. 1966년 제정된 연방 ‘시간제 통일법’이 각주로 하여금 DST에서 빠질 수는 있지만 일년 내내 이를 시행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라 애리조나와 하와이는 지금도 DST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시간을 정하는 것을 주 정부 결정에 맡긴 이 법 자체가 잘못 됐다. 이를 따르지 않는 주가 2개이길래 망정이지 수십개라면 어느 주가 이를 채택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일일이 확인해야 돼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방 의회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상원은 2021년 DST를 전국적으로 영구화 하는 ‘햇빛 보호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으나 이는 연방 하원에서 사실상 폐기됐다. DST를 영구화하는 것은 자연 시간을 거스르는 것으로 오히려 지금보다 더 건강을 해칠 것이란 전문가들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미 취침 의약협회는 2020년 DST를 폐기하고 ‘스탠다드 타임’을 전국적으로 도입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지금까지 나온 과학적 연구 결과는 이것이 올바른 길로 보이지만 DST를 좋아하는 유권자들도 있기 때문에 조만간 의회에서 결론이 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미국인들은 당분간 일년에 두번씩 건강을 해쳐 가며 번거로운 수고를 되풀이 해야 할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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