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수로 벌써 250일이 지났다. 푸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들려오는 소식들은 하나 같이 음울하기만 하다.
하루에 대대규모의 병력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마구 징집된 예비군들이 전선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우크라이나 군의 대포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푸틴이 기다리고, 기다려 온 것은 동장군(冬將軍)이었다.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관을 닫아걸었다. 그도 모자라 우크라이나의 에너지시설 파괴에 전력을 기울였다. 엄혹한 한파 내습에 두 손을 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하늘도 푸틴을 돕지 않는 것인가. 올 겨울 유럽의 날씨는 전례 없이 온난할 것이라는 예보가 쏟아지고 있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푸틴 이후에는…’, ‘그를 대치할 인물은…’- 요즘 러시아의 엘리트들의 마음에 떠올려지는 질문인 것으로 이코노미스트지는 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상승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교육수준이 높은 젊은이들은 징집을 피해 떼를 지어 러시아를 등지고 있다. 푸틴의 핵 공격위협에 서방은 눈 하나 깜짝 않는다. ‘푸틴은 대형 사고를 쳤고 전쟁은 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인식이 확산되면서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러시아의 엘리트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보도다.
군사적 패배는 체제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그에 따른 화는 체제를 떠받들어온 세력에게도 미칠 수 있다. 패색이 짙어지자 무모하기 짝이 없는 핵 공격 위협에 나선 푸틴. 그와 끝까지 같이 해 비참한 최후를 함께 맞이할 것인지…. 엘리트들의 고심이 깊어가고 있다는 거다.
푸틴은 한동안 ‘안전의 원천’으로 그들에게 인식됐었다. 그 푸틴이 불안정과 위험의 대명사로 비쳐지면서 푸틴 측근에서도 서방탈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모반의 기운이 크렘린에 점차 번져가고 있는 것으로 이코노미스트지는 밝히고 있다.
빠르면 앞으로 수 주 안에 러시아의 파워 엘리트들은 그들 스스로가 나서서 현 체재와 자신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푸틴 후계자 탐색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하면 푸틴은 권좌를 유지 할 수 있을까. 미국 언론들이 줄곧 던져온 질문이다. 패배가 거의 기정사실인 양 굳어지면서 그 질문은 다소 변질되고 있다. 현 체제의 러시아가 과연 존속할 수 있는가 하는 식으로.
푸틴은 3가지 중차대한 계산착오를 했다. 러시아군의 실력을 과대평가 한 것이 그 하나. 우크라이나인의 결의를 간과한 것이 그 둘이고 셋은 서방의 단결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그 대가로 푸틴의 위상은 말이 아니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 모스크바는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원령을 반대하는 대대적 시위 광경은 찾을 수 없다. 서방의 대대적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하루하루 그럭저럭 버텨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그러나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 우크라이나전쟁 패배는 크렘린을 뒤흔들고 그 결과로 푸틴 체제붕괴, 더 나가 현재의 러시아연방 와해를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컨버세이션지는 진단하고 있다.
비교적 가까운 역사, 그러니까 1991년 소련붕괴에서 그 전례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보았다. 문제는 당시 아무도 소련붕괴를 예측 못했던 것처럼 그 시기 예측이 어렵다는 사실이다.
푸틴은 사실상 ‘현대의 차르’나 다름없다. 다른 말이 아니다. 모든 권력이 그에게 집중해 있고 대안도, 분명한 권력승계자도 없다는 것이다. 푸틴 외에는 대안이 없는 이 구조로 푸틴 이후 러시아는 대혼란에 빠져들고 이는 연방해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연방은 190개 민족에 85개 연방주체(공화국, 자치주, 자치구 등)로 이루어져 있다. 저마다 강한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소수민족들은 주변부세력으로 중심부세력인 러시아와 심각한 갈등관계에 있다. 그 갈등이 소수민족에 집중된 편파적 예비군 동원 등 우크라이나 전쟁과정에서 더욱 악화돼 거대 분쟁을 불러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관련해 특히 주목대상이 되고 있는 지역은 러시아 남부 끝자락 북 코카서스(캅카스)지역이다. 전쟁 패배로 러시아제국의 심장부 모스크바가 흔들린다. 그 경우 체첸, 다게스탄공화국 등이 몰려 있는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분리-독립 봉기의 봉화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쿠데타, 장성들의 반란으로 인한 푸틴의 몰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보다는 권력의 심장부가 녹아내리는 형태(meltdown)의 체제 와해 가능성이 더 크다.” 포린 어페어스지의 전망이다.
이 잡지는 푸틴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상명하달 식 권력구조를 22년간 지탱해온 푸틴체제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하면서 만기친람(萬機親覽)의 푸틴에게 중차대한 위기가 잇달아 몰려올 때 과부하에 걸려 체제가 마비되면서 무너질 수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푸틴의 몰락, 그에 따른 체제붕괴. 그 시기는 그러면 언제가 될까. ‘아무도 모른다’가 그 답이다. 그러나 예상보다 그 날은 빨리 올 수도 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인다. 그런 권위주의 독재체제가 한 번 내폭상황을 맞게 되면 사전 경고도 없이 가공할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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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