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쿨
2022-11-04 (금)
안세라 주부
나는 학창시절 누구보다 성실한 학생이었다. 주어진 과제를 마감시간 내에 곧잘 해내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만큼 성적도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늘 ‘위에는 또 위가 있다’라는 엄마의 교육과 선생님들의 조언(?)으로 늘 만족하지 못했고,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공부하는 것 이외에 운동이나 취미 하나 가지지 못했다. 그렇게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늘 동기들과 나를 비교하고, 승진이 빨라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런 직장생활 속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현재의 조건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하루하루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남편의 가치관이 너무 부러웠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으면 저럴 수 있을까? 내 자식만큼은 ‘하루하루 절대적이고 강한 행복’을 느끼는 아이로 키워내야지. 그렇게 다짐을 하며 남편과 미국행을 결정했다.
어느덧 나의 아이가 세살이 되었고, 프리스쿨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등록을 한 날 교장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이 아이는 생일을 기준으로 아직 3살이네요. 우리 학교는 2살과 3살이 함께하는 반이 있고, 3살과 4살이 함께하는 반이 있어요. 어느 클래스에 들어가기를 원하세요?” “3살과 4살반이 함께하는 반에 넣어주세요.” 그랬더니 교장선생님이 조심스레 그 이유를 물으셨다. 그 질문을 듣는 동시에 나는 ‘아차!’ 싶었다. 늘 앞서가야 하고 뒤쳐지면 안 된다는 근성이 나도 모르게 내 아이를 윗반에 넣고 싶어했던 것이다.
뒤이어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어머니, 이곳은 1등인지 2등인지를 겨루는 장소가 아닙니다. 나는 이 아이가 엄마 품을 떠나 처음으로 다니는 첫 학교가 늘 재미있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따뜻한 선생님과 사이좋은 친구들이 많은, 그런 학교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군다나 이 아이 경우 제1 언어가 영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영어로만 이루어지는 수업이 조금은 힘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아이를 자기보다 나이가 조금 어린 친구들과 함께 하는 클래스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낮다고 생각합니다.”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아이를 학교를 보내려한 걸까.
<안세라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