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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중 한 명 끼니 걱정”

2022-10-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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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10월16일이 무슨 날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워낙 무슨 날이 많기도 하려니와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날은 세계 식량의 날, 43년 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회원국들에 의해 제정됐다.

FAO만 해도 각국의 문화유산 보호 등에 앞장서고 있는 유네스코나 아동기금인 유니세프 등에 비하면 미국에서는 자주 듣기 어려운 유엔 기구이기도 하다. 한국서도 보릿고개, 춘궁기라는 말이 사라지면서 이 기구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이 드물어졌다.

하지만 올해 세계 식량의 날을 기념한 나라는 150여개국에 이르렀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식량 전문가들은 이날이 갖는 의미를 다시 환기시켰다. 기아가 심각한 사회 문제인 나라가 많기 때문이다.


기아가 가장 심각한 곳은 아프리카가 대표적이다. 아프리카 중에서도 지중해 연안, 아랍권에 속하는 북부 아프리카를 제외한 사하라 사막 남쪽의 ‘블랙 아프리카’의 기아는 거의 일상적이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11억 인구의 언어는 1,000개가 넘지만 기아는 공통된 문제로 꼽힌다. 연도와 지역에 따라 정도에 조금씩 변화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지형적으로 뿔처럼 툭 튀어나왔다고 해서 ‘아프리카의 뿔(the Horn of Africa)’이라고 불리는 소말리아 반도의 기아가 지금은 가장 심각한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르완다, 케냐 등 이 일대 10개 국은 계속된 가뭄으로 1억4,000만명의 인구 중 거의 3분의1 정도인 4,000만명 가까이가 기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3명 중 한 명 꼴로 끼니 걱정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FAO 등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세계 기구들은 2030년을 아프리카의 기아 퇴치 시한으로 잡았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는 다양한 지원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뜻밖의 코로나 팬데믹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지구 온난화가 가져온 이상기후 등이 겹치면서 계획은 차질을 빚고 있다.

아프리카의 기아 퇴치에는 아시아가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아프리카와는 달리, 아시아에서는 북한을 제외하고는 식량문제가 최근 심각한 이슈로 대두된 예가 거의 없다. 기후가 농사에 좋은 동남아뿐 아니라 중앙 아시아나 몽골 등에서도 기아가 사회문제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을 통해 식량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이다.

녹색 혁명은 1960년대 당시 심각하던 아시아의 식량 위기를 해결함으로써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작물의 품종 개량과 다양화, 적기의 비료 공급, 관개시설 확충, 효과적인 병충해 방제 등을 핵심 요소로 하는 이 농업 혁명이 성공하기까지 각국 정부의 경제정책이 뒷받침됐다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다. 민관이 함께 한 노력으로 녹색 혁명에 성공함으로써 아시아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괄목할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세계 식량정책연구원(IFPRI)은 지적한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기아 해결을 위해서는 아프리카 형 녹색 혁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역 환경에 맞는 종합적인 대책이 세워지고, 추진돼야 그 곳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은 원조나 수입이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식량은 원칙적으로 그 땅에서 일궈낼 수 있어야 한다.

기아 퇴치는 아프리카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과제이기도 하다. 미국도 팬데믹 때는 식품을 구하기 어려운 가정이 적지 않다는 보고서가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1달러50센트면 핫덕 하나에 무한 리필 음료수로 어느 코스트코에서나 아쉬운 대로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미국과 블랙 아프리카의 기아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후기 산업화 시대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굶주림.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같은 지구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의 도리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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