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중간선거에 소중한 3표를 행사했다. 한 표가 아니라 세 표인 이유는 가족을 대표하여 우편투표지 3장을 모두 혼자 찍었기 때문이다. “투표는 민주시민의 권리이고 의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우리 집의 남자들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는 일이 잦기 때문에 몇 년 전부터는 아예 투표지를 수거하여 똑같이 찍은 다음 봉투에 사인만 받아서 우송하고 있다. 말하자면 투표의 전권을 위임받아 내 표가 3표가 된 것이다.
이번 선거는 열기가 무척 뜨겁다. 보통 중간선거는 대선에 비해 관심도 적고 투표율도 낮은데, 올해는 정치계와 언론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도 남다르다. 유권자등록이 크게 늘었고, 우편투표와 사전투표의 열기도 뜨겁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집에 날아오는 투표 설명지, 견본 투표지, 공식 투표지, 선거정보 팸플릿만 보아도 과거 선거 때보다 그 양이 현저하게 많다. 모두 영어와 한국어로 따로 인쇄되어 유권자 숫자대로 보내오니 그것만 쌓여도 한 짐이다. 공식 유권자 정보안내서(Official Voter Information Guide)는 영어와 한국어판 모두 각각 128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책인데 그런 우편물이 사람 수대로 계속 날아오고 있어서 자원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중간선거에 대한 이처럼 유례없는 관심은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인해 심화된 양극화 현상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민주 공화 양당이 상원과 하원을 장악하려고 사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번 중간선거에서 양당이 지출한 광고비는 무려 75억 달러로, 2018년 중간선거의 40억 달러의 두 배에 가까운 액수를 뿌려대고 있다. 말 그대로 요즘엔 TV를 켜면 선거 광고가 화면을 도배하고 있다.
지난 2년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했던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잘해야 상원을 사수하고, 잘못하면 상하원 모두 소수당으로 전락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난 6월 낙태 판결이 뒤집혔을 때는 다들 기함을 하면서 당장 민주당으로 달려갈 듯했으나 민심이란 늘 요동치는 법, 몇 달이 지나는 동안 물가는 안 잡히고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아지자 지금은 공화당이 우세하다는 보도가 계속 나온다.
만일 상하원이 모두 공화당에 넘어가면 앞으로 2년 동안 바이든 행정부가 얼마나 고생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벌써 공화당 지도부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학자금 대출 탕감도 취소될 것이고, 드리머 구제법안(DACA)은 또 다시 표류하게 되고, 의료혜택과 연금도 축소되거나 손보게 될 것이며, 기후변화 대응도 후퇴할 것이다.
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하고, 투표는 그래서 하는 것이다. 지난주 발표된 폴리티컬 데이터(PDI) 자료에 의하면 지난 19일까지 LA와 오렌지카운티를 합해 총 3,932명의 한인이 투표를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집 3표도 포함돼있는 이 숫자는 그러나 LA와 OC의 한인 유권자 14만명의 2.8%밖에 안 되는 아주 적은 숫자다. 앞으로 남은 2주 동안 보다 많은 한인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나서야하는 이유다.
그런데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미국 선거의 투표지 밸롯(ballot)을 작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 수많은 공직 후보자를 찍고 각종 주민발의안에 가부를 표해야하는데 후보들의 면면이나 발의안의 내용을 일일이 파악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인조차도 헷갈릴 정도니 일반 주민들에게야 얼마나 번거로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주와 연방 차원을 제외하고는 거주하는 지역마다 주민발의안과 후보가 달라서 누구의 도움을 받기도 수월치 않다. 이번 선거에서 LA 한인타운 주민이 받은 밸롯에는 주민발의안 13개와 함께 연방 상원위원과 하원의원들, 가주 주지사와 부지사, 주 총무처장관, 재무국장, 회계감사관, 검찰총장, 교육감, 카운티 셰리프 국장, LA 시장과 시의원 등 굉장히 중요한 위치의 공직자들은 물론이고 주 대법원장과 판사 20여명에 대한 투표가 함께 기재돼있다.
이 가운데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후보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지만 수많은 법조계, 교육계 후보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나는 투표 때마다 LA타임스가 지지(endorsement)하는 후보와 법안의 가부를 참고하고 있다. 어차피 모르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론지의 선택을 믿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LA타임스는 연방 하원의원들 후보 가운데 영 김(40지구), 미셸 박 스틸(45지구), 데이빗 김(34지구) 등 한인 후보들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진보 성향의 신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민주당 후보를 미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한인을 정계로 보내는 일이 중요하므로 당적을 떠나 한인 후보에게 찍어야할 것이다.
LA타임스에서 일일이 항목을 대조하며 찾아보는 일도 쉽지는 않아서 이번에도 거의 한시간 걸려서 3회의 기표를 완성했다. 기표 동그라미가 너무 커서 57개나 되는 항목을 하나씩 꼬박 채우는 일도 (세번을 반복해서) 번거로웠다. 집에서 찬찬히 작성하는데도 이런데, 투표소 현장에서는 얼마나 더 헷갈릴 것인가.
그래도 이번 선거는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마치 시험 치르는 듯한 흥분으로 우편투표를 마쳤다. 어쩌면 이렇게 혼자 애쓸게 아니라 선거 때마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함께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며 투표하면 재미도 있고 뿌듯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엊그제 아들이 물어본다. “엄마, 내가 LA 시장에 누구 찍었어?”
투표일이 2주 남았다. 모두모두 한 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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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