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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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적 자기 비하 증후군

2022-10-20 (목) 손용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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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산다는 것? 솔직한 표현으로 이 말은 그저 ‘주어진 여건’에서 그럭저럭 꾸려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결혼해서 아이 낳고 기르고 학교 보내고, 부모 모시고 부부 서로 챙기고 가끔 여행이나 휴가도 즐기고 등등…. 이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이 아닌가.

사실 ‘삶의 기준치’란 뭐 딱 부러지게 객관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 그러나 가끔 언론들은 심심풀이(?)로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발표하곤 한다. 그 수치들은 대부분 외부 조사기관의 설문에 따라 매겨지는 주관적 평가들이다. 사람들은 그 수치를 사실인양 믿으면 심기가 매우 불편해진다. 왜냐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럭저럭’ 잘 살고 있으면서도 그 결과를 보면 우리 삶이 마치 ‘지옥’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생각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대체로 우울하다.

언젠가 갤럽에서 조사된 ‘행복지수’에서 한국인은 143개국 중 118위였다고 한다. 반면 수명이나 교육 복지 등을 객관적 통계수치로 평가하면 한국의 삶의 질은 187개국 중 15위로 껑충 뛰어오른다. 같은 개념인데도 왜 이리 차이가 날까? 이유는 간단하다. 전자는 주관적 반응에 대한 ‘엿장수’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 국민의 삶은 주관적으로는 지옥이지만, 객관적으로는 천국 가는 길목 어느 정도에는 와있다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부정적 감정 성향’이라고 분석한다는데, 이는 한국인의 ‘우울증적 자기학대’의 일종으로 2천년대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이다. 시대정신?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린가? 왜 우리는 스스로 비하하고 세상을 비난하고 내 나라를 저주하는가? 한 사회 비평가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금세기 들어 새로이 이념적 갈등이 불거지면서, 여기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정치·경제적인 담론을 지배하고 관통하는 것이 바로 ‘우울증적 자기비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언론은 ‘중산층이 늘어났다’든가, 10년 전에 30년 걸리던 내 집 마련의 꿈이 지금은 10년여로 줄었다든가 하는 긍정적 수치는 배제한 채 그냥 ‘하류층이 늘어났다’ ‘사다리가 끊어졌다’ ‘내 집 마련은 몽상이다’라고만 깎아내린다. 또 부패지수도 그렇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는 부패했다’라는 데는 압도적(53.7%) 응답을 보이지만 ‘네가 직접 뇌물 준 적이 있나?’에는 3%라고 했다. 즉, 표피적인 비관론만 확대 보도한다.”라고 꼬집었다.

특히 지난 정부 시절에는 5년 내내 이렇게 부르짖었다. “대한민국은 지옥이다. 빈부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가난은 노력해봤자 개선되지 않는다. 사회는 썩었고 기업도 부패했다. 지금 일자리를 못 가진 사람은 앞으로도 희망이 없다. 부동산은 다락같이 오르고 마이 홈은 꿈에서나 가능하다. 결혼도 자녀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민주주의는 사라졌고, 서민은 기득권의 피지배층으로 전락했다… 등등 모두가 실책이고 전부가 ‘적폐’다. 그래서 이젠 죄 철저히 갈아엎어야 한다”고 선동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부정에 대한 개선책이나 고쳐진 사항은 단 한 조목도 공표된 것이 없다. 되레 그 시절보다 더하게 세상은 급속도로 타락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맞는 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국민소득 5만달러의 한국몽이 실제로 그동안 3만달러 가까이나 이뤄진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동안 먹고 남은 물이 탱크에 반이나 차있지만 더 노력해 생수로 채울 생각은 없이 그냥 불평과 불만이었다. 이제 진짜 국민 모두가 겸허하게 생각을 모아보자. 이제는 제발 그네들의 선동에 부화뇌동하지 말자. 5년 동안 눈감고 참아주었다면 이제 그만 진실을 밝히고 그들을 물러서게 하자. 내 조국 내 가정의 앞날을 위한 진정한 한국몽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손용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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