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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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의 혀, 혀 안의 도끼

2022-10-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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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는 흔히 손맛이라고 한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 때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낚싯대로 부터 손끝으로 전해지는 짜릿한 진동을 낚시꾼들은 즐긴다. 사람들은 재미있어 하지만 물고기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생과 사의 몸부림이다. 사람들에게 잡혀 죽지 않으려는 필사적 사투이다. 물고기가 잡히는 것은 입에 낚시 바늘이 걸렸기 때문, 입이 화근이다. 입 때문에 화를 입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LA 정계가 몇몇 정치인들의 노골적 인종차별 발언으로 발칵 뒤집혔다. 누리 마티네즈 시의장, 케빈 데 리온 시의원, 길 세디요 시의원 등이 1년 전 나눴던 대화녹음이 돌연 공개되면서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다. 라틴계의 대표적 정치인인 이들은 라티노 커뮤니티의 정치력 강화 욕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흑인, 멕시코 원주민 등 타인종들을 마구잡이로 조롱하고 비하했다. 자신들끼리의 비공개 모임이서 방심했겠지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 법. 누가 했는지 모를 녹음파일이 레딧에 올려 지면서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결국 LA 사상 최초의 라티노 여성 시의장이었던 마티네즈는 시의장직에 더해 시의원직까지 내려놓았고, 나머지 두 시의원들은 날로 거세지는 사임 압박을 얼마나 버텨낼지 알 수 없다. 생각 없이 함부로 입을 놀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입속의 혀 같다는 말이 있다. 우리 몸에서 혀만큼 부드러운 것이 없다. 그런데 그 부드러운 혀를 잘못 놀리면 말이 도끼가 되어 남을 다치게 하거나 자신이 다친다. 바로 ‘법구비유경’에 나오는 ‘부재구중(斧在口中)’ 즉 ‘입안의 도끼’이다. 부처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입안에 도끼가 함께 생긴다”며 그 도끼를 잘 간수하지 않으면 제 몸을 찍는다고 가르쳤다.

11세기 초 중국에서 간행된 불가의 규범서 ‘석씨요람’은 화종구생(禍從口生)이라는 말로 말의 엄중함을 강조했다. 모든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말, 재앙은 입을 좇아 생겨난다는 말이다.

혀 조심 즉 말조심은 동서를 막론하고 강조되어왔다. 사람들이 혀를 잘못 놀려 낭패당하는 일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불교가 혀를 도끼라고 한다면 성경은 혀를 불이라고 한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야고보서 3장 6절> 라고 무섭게 경고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LA 시의원들의 발언내용을 살펴보면 가장 주도적으로 말한 장본인은 마티네즈였다. 그는 평소 말투가 매몰차고 직설적이기로 유명하다. 그런 만큼 문제의 모임에서 그가 한 표현들은 별로 놀랍지 않다는 것이 라틴계 커뮤니티의 반응이다. 한편 마티네즈가 인종차별적 조롱에 거침이 없었던 것은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시의원들이 동조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여 앉아 남을 헐뜯는 것 즉 중상은 살인보다 위험하다고 탈무드는 말한다. 살인이 한 사람을 죽일 때 중상은 기본적으로 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남을 헐뜯는 바로 그 사람,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 그리고 화제가 된 그 사람이다.

말처럼 쉬우면서 어려운 것이 없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말 한마디 잘못해서 공든 탑을 무너트리기도 한다. 이왕이면 고운 말 쓰고 좋은 말하면 탈이 없을 텐데 그게 잘 안 된다. 말은 입으로 소리만 내서 하는 게 아니라 인격으로 생각을 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의 또 다른 어려움은 주어 담을 수가 없다는 것. 한번 발설하고 나면 쏘아버린 화살 같아서 다시 잡아들일 수가 없다.

우리에게 입이 하나 귀가 둘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두 번 들을 때 한번만 말한다면 말로써 낭패 당하는 일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혀를 조심하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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