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우리 안의 네안데르탈인

2022-10-18 (화) 민경훈 논설위원
크게 작게
1856년 독일 네안데르 골짜기에서 요한 풀로트라는 학교 교사가 인간의 뼈로 보이는 유골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인류학자 헤르만 샤프하우젠에게 보냈고 그는 이것이 고대 인류의 뼈라는 결론을 내렸다. 수많은 만화와 소설의 소재가 된 네안데르탈(독일말로 ‘네안데르 골짜기’라는 뜻)인은 이렇게 탄생했다.

처음에는 야만적 원시인으로 취급받던 네안데르탈인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말을 하며 불을 사용하고 옷과 도구를 만들어 군집 생활을 하는 등 현생 인류와 큰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은 기원 4만년전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이들과 만나면서 멸종했는데 한 때는 사피엔스가 이들과 전쟁을 벌여 도살했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이제는 조금 더 사냥 기술이 뛰어난 쪽이 점차 그렇지 못한 쪽을 몰아내기만 해도 결국 밀린 쪽은 멸종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으로 봐 자연 도태 쪽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어째서 현생 인류가 더 사냥을 잘 했는지를 놓고는 더 효과적인 무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설부터 언어 능력이 더 뛰어났다는 설, 그룹 구성원 간에 협력이 잘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설 등등이 있으나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네안데르탈인의 존재가 알려진 후 사람들의 관심을 끈 사항의 하나는 이들간에 성적 결합으로 인한 자손이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을 써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인물로 진 아우엘을 빼놓을 수 없다. 핀랜드계 미국 이주자의 후손인 아우엘은 구석기 말기의 인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오랜 연구 끝에 1980년 44살의 나이에 ‘동굴 곰의 부족’(Clan of the Cave Bear)이란 책을 펴낸다.

줄거리는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크로마뇽인 엄마가 지진으로 죽으면서 고아가 된 5살짜리 여자 아이 아일라를 근처를 지나던 네안데르탈인들이 구해 기르지만 결국 같이 어울려 지내지 못하고 아일라는 강간당한 후 아이를 출산하고 추방되는 신세가 된다. 그 후 이 이야기는 ‘대지의 아이들’(Earth’s Children)이란 시리즈로 이어져 ‘말들의 계곡’ ‘매머드 사냥꾼’ ‘평원의 길’ ‘돌의 안식처’ ‘동굴 벽화의 땅’ 등 속편이 계속 나오면서 아일라가 지금의 우크라이나에서 빙하시대 유럽을 여행하며 프랑스까지 가는 모험담이 펼쳐진다.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4,500만부가 팔리고 18개 언어로 번역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시리즈가 나왔을 때만 해도 과연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아이가 나올 수 있느냐에 관해서는 두 인종은 별개의 종으로 교배가 불가능할 것이란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유전학이 발달하면서 이 두 인종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고 지금 지구 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몸 속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를 처음 밝혀낸 사람은 스웨덴의 고유전학자 스반테 페보로 ‘고유전학’(paleogenomics)이란 학문 자체가 그가 독일 라이프치히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 창시한 학문이다. 네안데르탈인의 뼈는 최소 4만년이 넘어 DNA가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기도 힘들뿐 아니라 채집 과정에서 채집자의 DNA와 섞이기 쉽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채취하는 것은 ‘짚더미에서 바늘 찾기보다 힘들다’는 말이 있는데 페보는 독자적인 기술과 끈기로 해낸 것이다.

올해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은 페보는 1982년 역시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수네 베르그스트롬과 에스토니아의 화학자 카린 페보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로 유전자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런 가정사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또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4만년 된 손가락 뼈 하나를 분석해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데니소바’라는 고생 인류의 것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수만년 전에는 현생 인류 직계 조상 말고도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고 있었던 셈이다.

페보의 연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부터다. 그는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물려 받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중증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밝혀냈다. 현재 아프리카 주민들은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거의 갖고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이들이 아프리카밖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유럽과 아시아인들은 몸 속에 1~2%의 네안데르탈 유전자를 갖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의료 환경이 열악한 아프리카에 감염자와 사망자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의외로 둘 다 적은 것은 이것이 그 원인의 하나로 분석된다. ‘고유전자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이미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현생 인류 탄생의 비밀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페보의 노벨상 수상이 이 학문의 약진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