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네 커뮤니티 스포츠 센터에 등록한 한 한인은 실내 코트에서 백인 노인들이 네트를 가운데 두고 커다란 탁구채 같은 것으로 마치 족구를 하듯 플라스틱 공을 상대 코트로 넘기는 경기를 하는 걸 보게 됐다. 노인들은 두 명씩 팀을 이뤄 볼을 서브하고 이를 되받아 치면서 복식경기를 벌이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공을 가지고 배드민턴 코트 위에서 벌이는 탁구 경기 같았다. 처음 접한 스포츠였기에 센터 직원에게 물었더니 “피클볼”(pickleball)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피클볼은 많은 한인들에게 조금 생소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가장 빨리 동호인을 늘려가고 있는 스포츠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2022년 현재 미국의 피클볼 동호인은 무려 480만 명에 달한다. 특히 2019년부터 2022년 사이에만 거의 40%가 늘었다. 2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포츠’로 선정된 종목이 바로 피클볼이다.
피클볼은 배드민턴과 테니스 그리고 탁구의 요소가 결합된 스포츠이다. 이 스포츠는 1965년 시애틀 인근 베인브리지 섬에서 우연히 탄생했다. 친구들과 골프 게임 후 배드민턴을 칠 계획이었던 조엘 프리차드(후에 워싱턴 부지사를 지냄)가 셔틀콕이 없어 배드민턴을 칠 수 없게 되자 대신 야구 연습용 플라스틱 공인 휘플볼(wiffle ball)과 합판으로 만든 패들(paddle)을 이용해 게임을 한 것이 시초가 됐다.
이후 피클볼은 시애틀 지역을 중심으로 서서히 인기를 얻어가더니 1984년 공식협회가 결성되면서 전국적인 스포츠로 확산됐다. 현재는 50개 주 전부는 물론 인도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다른 국가들로까지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 내 동호인 구성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이전에는 장·노년층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젊은 동호인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연령층은 24세 이하라는 조사도 있다.
피클볼이 이처럼 빠르게 동호인들을 늘려가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룰이 비교적 단순하고 패들과 휘플 볼 등 장비를 다루기가 다른 종목들에 비해 손쉽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고 피클볼의 운동효과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상대의 볼을 넘기려면 무엇보다 눈과 손의 코디네이션이 요구되는 만큼 피클볼을 오래 하다보면 민첩성이 좋아진다.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속도에 맞춰 30분 워킹을 한 사람들보다 더블로 30분 피클볼을 친 사람들(이들을 피클러라 부른다)의 심장박동수가 14% 더 높았으며 칼로리 소모는 36%가 더 많았다. 동호인들의 사회적 교감을 통해 얻게 되는 긍정적 정서는 덤이다.
그래서인지 피클볼에는 중독성이 있다. 새롭게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의 절반은 6개월가량 지난 후 이를 포기하지만 피클러들의 경우에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단기간 내에 동호인이 500만 명에 육박하게 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피클볼 동호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사는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빌 게이츠이다. 게이츠는 50년의 구력을 가진 피클러이다. 피클볼을 만든 프리차드는 게이츠 시니어의 친구였다 그런 까닭에 게이츠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피클볼을 가까이 하게 됐으며 평생의 스포츠가 된 것이다. 게이츠는 피클볼의 인기가 뜨거워지고 있는 데 대해 유튜브 영상을 통해 “시애틀에서만 행해지던 스포츠가 마침내 역동적인 시기를 맞고 있다”며 벅찬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피클볼은 실내와 실외 모두에서 가능하다. 인기를 뒷받침하듯 코트 수는 전국적으로 무려 3만8,000개에 달한다. 가까운 피클볼 코트를 찾고 싶다면 Pickleball+ 앱을 사용하거나 USA Pickleball Association의 코트 찾기에 들어가 짚 코드를 집어넣으면 된다. 미국인 클럽에 참여해도 좋고 뜻 있는 한인들이 나서 지역 한인 동호인 모임을 구성해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