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매 맞고 자라는 나무

2022-10-12 (수)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크게 작게
체벌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미국에서 아이들을 때려서 키웠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한국도 더하면 더했지 다르지가 않다. 더구나 요즘 같이 아이 하나만을 낳아 키우는 가정이 많은 세상에 아이에게 손을 댄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부모가 많을 것이다.

교육학적으로는 여전히 두 가지 논쟁이 존재한다. 매 맞고 자란 아이는 커서 생활력이 강한 반면 폭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반면에 오냐, 오냐 하며 응석받이로 키운 아이들은 어려서 버르장머리 없이 자라고 성장해서는 자립심이 약하며 쉽게 포기하는 단점이 있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매 맞을수록 잘 자라는 것도 있다. 언론이라는 나무다. 그렇다고 언론이 반드시 매를 맞아야 잘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권력으로부터 압제를 받고 따돌림을 받을 때 언론은 독자나 시청자들로부터 더 뜨거운 박수를 받았고 큰 언론으로 성장해갔던 사례는 동서양의 언론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90년대 초부터 이곳 미주에 진출해 동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의 문화방송이 지금 윤석열 정부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고 있다. 돌아보면 문화방송은 개국 초부터 바람 잘 날 없이 지나왔다. 1959년, 당초 부산에서 먼저 출발한 문화방송은 2년 뒤인 1961년 12월2일 서울 인사동의 한 가구점 2층에서 한국 최초의 민간방송이자 상업방송으로 고고의 첫 전파를 발송했었다.

그러나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이 문화방송의 창업자인 김지태 씨를 부정축재자로 몰아 자진헌납의 형식으로 방송국을 강탈했다. 그로부터 문화방송은 박정희 대통령 측근인사들로 구성된 5.16 장학회(지금은 정수장학회)를 주축으로 운영되었는데 음수사원(飮水思源)하라는 준엄한 사훈(社訓)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은 오히려 자유언론에 대한 갈증만 높여가고 있었다.

1980년 봄, 전두환 군부가 정권찬탈의 목적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신문사, 방송국에 사전 검열제도를 강화했을 때 문화방송의 기자협회와 PD협회가 선봉이 돼 자유언론실천 운동을 결의하고 검열거부와 제작거부운동을 벌였다. 그해 5윌, 신군부는 광주 시민을 무차별 살상하는 참극을 자행했으며 7월에는 검열거부를 주도했던 문화방송의 기자, PD 등 98명을 비롯해 전국의 언론인 933명을 강제 해직시키고 12월에는 또 언론사 통폐합이라는 만행을 저질렀다.

문화방송은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새로 설립된 방송문화진흥회가 70% 대주주가 되고 정수장학회가 30% 소주주가 되는 거대 공영방송이 되었으나 정부는 통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다시 재벌에 의한 민영화를 획책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확실한 공영방송 체제로의 개선이 시급하다.

안보와 경제로 한반도 최악의 위기 중에 권력자의 무능과 거짓을 덮기 위해 언론을 탓하고 겁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때 해직과 이민과 복직의 애환을 안겨 주었지만 문화방송은 내게 있어 어머니 같은 존재다. 최인호 씨는 어머니를 그린 그의 소설에서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믿음을 고백했는데 나도 문화방송은 결코 죽지 않고 더 큰 나무로 자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