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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푸틴과 ‘아마겟돈’

2022-10-11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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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은 히브리 말로 ‘메기도의 언덕’이란 뜻이다. 이스르엘 계곡을 내려다 보는 언덕 위에 자리잡은 메기도는 고대부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지난 4,000년간 주요 전투만 최소 34번 벌어진 군사적 요충지다.

인류 역사상 첫번째 전투 기록인 기원전 1479년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스 3세와 가나안 연합군과의 싸움이 벌어진 곳도 여기고 히브리의 전사 데보라와 바락이 시세라를, 기드온이 미디안과 아말렉족을 물리친 곳도 여기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사울과 아들 요나단이 전사하고 유다의 가장 중요한 왕의 하나인 요시아가 이집트의 파라오 네코 2세에게 살해당한 곳도 여기다.

회교도의 명장 살라딘은 이곳에서 십자군과 네차례나 전투를 벌였고 나폴레옹이 오토만 제국에, 제1차 대전 때 영국의 앨런비 장군이 오토만 제국에 대승을 거둔 곳도 여기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에서 선과 악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질 곳을 ‘아마겟돈’이라고 적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주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핵 “아마겟돈” 위험이 60년래 가장 높아졌다며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면 쉽게 아마겟돈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관리들은 현재까지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하려 한다는 증거는 없다면서도 푸틴이 궁지에 몰리면서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만 해도 몇 주면 쉽게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던 전쟁의 방향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흐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은 동부의 전략적 요충 하르키우를 탈환한 데 이어 남쪽 헤르손 전투에서도 우위를 보이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2014년 크림 반도 합병 후 푸틴의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던 이곳과 러시아를 있는 크림 대교가 원인 불명의 폭발로 대파됐다. 40억 달러를 들여 만든 이 다리는 우크라이나 전 군 수송에 긴요할 뿐 아니라 상징적 의미가 커 가뜩이나 추락하고 있는 푸틴의 이미지를 구겨놨다.

푸틴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국민들과의 묵시적 약속을 깨고 동원령을 내렸지만 이에 해당하는 러시아 인들은 국경을 넘어 탈출하기에 바쁘다. 이미 20만명이 도주한 것으로 집계되는데 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징집된 러시아 청년들은 고물 소총도 지급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시설도 없는 수용소에서 훈련받고 있다는데 그런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전선에 끌려나가 개죽음 당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대로 전쟁에 진다면 푸틴은 그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임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최후 카드로 내놓은 것이 전술핵 위협이다. 장거리 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어 대도시를 공격하는 전략핵과 달리 전술핵은 전선에서 상대방 부대를 공격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것이 전세를 바꿔놓을 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대군이 집결돼 있는 중심을 때릴 때 효과적인데 지금처럼 광대한 전선에 부대가 흩어져 있을 때는 큰 의미가 없고 터진 후 바람의 방향에 따라 낙진이 러시아 본토로 흘러 들어갈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이미 우크라이나 4개 주를 자기 영토라고 선언해 놓고 거기다 핵폭탄을 터뜨린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군사적 효용은 불확실하면서 가뜩이나 나쁜 세계 여론은 급속히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미온적인 중국과 인도가 반러시아로 돌아서고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도 핵무장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60년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이 소련 미사일 철수를 요구하면서 해상 봉쇄를 하자 전쟁 일보전까지 갔지만 뒤로는 몰래 비밀 협상을 통해 미국이 터키에 배치한 중거리 핵 탄도 미사일을 모두 해체시키는 조건으로 소련도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기로 합의가 이뤄져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주고 받은 셈이지만 세계 여론은 미국의 힘에 소련이 굴복한 것으로 여겼고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이 불과 2년 뒤 실각한 것도 그 영향이 컸다.

그 때는 협상으로 문제를 풀 길이 있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는 타협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국민들은 이제 러시아가 침공후 강제 합병한 4개주는 물론 2014년 뺏긴 크림반도까지 되찾겠다고 나서고 있고 푸틴 입장에서는 이제 와서 4개주를 돌려주겠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더 많은 러시아 병사가 죽고 반전 여론이 거세게 일어 푸틴이 쫓겨나는 것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어 보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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