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께서 취나물 모종을 주시면서 잘 길러서 비빔밥에 넣어 먹으면 향기가 좋다고 하셨다. 취나물의 향긋한 냄새를 나도 좋아하기에 모종을 심어놓고 기다리고 있다. 비빔밥은 ‘한식(韓食)’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다. 밥 위에 형형색색의 재료를 올린 화려함은 그 자체로 예술인 데다 채소, 육류, 해산물 등 취향에 따라 재료를 선택할 수 있어 외국인들이 선호하기도 하고 소개하기도 무난한 한식이다. 덕분에 기내식으로 최초로 들어간 한식이기도 하고 필자도 비빔밥을 제공하는 대한민국 항공기를 좋아한다.
유래를 살펴보면 먼저 조선시대 왕이 먹던 궁중음식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가볍게 식사를 대체하면서 비빔밥의 형태로 먹던 것이 전해 내려왔다고도 하고, 왕의 음식인데 궁중음식이 아니라 전쟁 피란길에 왕에게 진상했던 음식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그 외에도 서민들이 농번기에 바빠서 여러 음식을 섞어 한 번에 먹는데서 유래했다거나, 동학혁명 당시 그릇이 충분치 않아 이것저것 비벼 먹다가 유래한 음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달리 우리 조상들에게 제를 지내며 올렸던 제사 음식을 비벼 먹은 데서 유래했고, 이는 조상이 먹은 음식을 자손들이 함께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남은 음식을 해를 넘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섣달그믐날 저녁(음력 12월 30일)에 남은 음식을 모두 모아서 먹었다 하여 역사서에 ‘골동반’(骨董飯)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비빔밥 재료인 나물종류도 콩나물, 무생채, 당근, 시금치, 취나물, 참나물, 숙주나물, 박나물, 고사리, 도라지, 미역 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맛도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한 재료들이 양념고추장과 고소한 참기름으로 비벼지면 각자의 맛을 간직하면서도 다른 합쳐진 맛을 내니 비빔밥은 점점 더 인기를 얻어갈 것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못 뵌 장인, 장모님을 방문차 한국을 다녀왔다.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이신 두 분도 지나간 몇 년 사이에 활동의 제약을 받으시면서 많이 약해지셨다. 또 무엇보다도 찾아오는 친척, 친구도 제한되다보니 무척 외로워하신다. 이번 짧은 방문동안에는 오직 두 분들과 식사하고, 나무 많은 곳을 산책하며 대화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서로 독특한 기질을 가지셨는데, 사교적이신 장모님은 장인어른이 젊었을 때부터 가정적이지 않고 일에만 치중하고, 본인 중심적이며,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는 넋두리를 보따리로 푸신다. 한편 자수성가하신 장인어른 말씀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발돋움 하던 시기로서는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했으며 사회에 공헌도 많이 하셨다, 사회에서는 본인을 알아주는데 가까이 있는 가족은 그것을 몰라준다는 불만이었다. 나는 장인어른의 이야기가 궁금하여 진지하게 경청을 하였다. 장인어른은 일찍이 토목기술을 전공한 후 미국 국무성의 초청으로 유학한 엘리트 토목기술인이시다. 여러 가지 공로를 인정받은 것 중에서 2021년 엔지니어링의 날에는 영예의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셨다. 그 배경에는 ‘대한민국 엔지니어링 최초의 시작을 알리는 엔지니어링 기술 전문가’ 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 춘천댐, 양화, 한남대교,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 인천항 갑문 건설 등의 계획 수립 및 총감독을 통해 사업을 완성하여 국가 경제성장의 기초에 공헌하였다. 특히 인천항 갑문 건설은 최대 10 미터에 이르는 조수 간만의 차를 극복해 하루 24 시간 내내 선박이 입출항 할 수 있도록 한 동양 최대 규모의 수문식 도크 사업이었고, 당시 대통령도 큰 관심을 가지고 밀어주었던 공사였다. 건설부에서 나와서는 해외 수주 전담 엔지니어링 회사를 설립하여 해외 건설의 수주를 국내에 가져오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예상치 못했던 자연 재해로 일어났던 사고들, 모자라는 기술력을 배워오느라 싱가포르, 독일, 프랑스, 미국을 오가며 눈치를 보던 일, 다른 사람들과의 견해차와 오해로 어려움에 빠졌던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너무나 흥미진진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늘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게는 진부한 이야기일수 있겠고 아버님 본인의 자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한국 경제 성장의 역사와 그 당시 배경의 숨겨진 이야기 등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한 남자가 치열하게 살아온 삶이어서 남의 이야기로 여겨지지 않았다.
가족들도 한사람씩 보면 독특한 장단점이 있음을 본다. 각기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가정을 이루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비빔밥의 양념장과 참기름처럼 독특한 가족들의 맛을 서로 들어주고 공감하며 이해하여 주면서 잘 섞어준다면 더 멋있고 맛있는 가정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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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