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텔레비디오’에서 ‘요시하루’까지… 나스닥 도전은 계속된다

2022-10-04 (화)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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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기는 맨손으로 일군 한인 1세들 벤처 성공신화

▶ 90년대 후반부터 한인 자본 은행들 대거 진입, 최근 한인 1.5세들 세운 체인업체들 관문 뚫어

‘텔레비디오’에서 ‘요시하루’까지… 나스닥 도전은 계속된다

지난 2016년 8월 뉴욕 나스닥 거래소에서 뱅크오브호프(심볼 HOPE)가 성공적인 합병 완료를 기념하는 오프닝 벨 타종행사를 갖는 모습. 케빈 김 행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부터)과 고석화 당시 이사장 등이 박수를 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텔레비디오’에서 ‘요시하루’까지… 나스닥 도전은 계속된다

미주 한인 기업들 나스닥 상장 도전사

올들어 지난 8월 한인이 창업한 커피 전문기업‘리본커피’가 나스닥에 상장한 데 이어 9월 들어서는 한인이 운영하는 일본식 라면체인 기업‘요시하루’가 나스닥에 잇따라 입성함에 따라 미주 한인기업들의 나스닥 상장사가 다시 한 번 조명되고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 사이에는 황규빈씨가 설립한 텔레비디오 등 한인 1세들이 창업한 벤처 기업들이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됐고, 1990년대 후반 들어서는 한인 자본을 기반으로 성장한 주요 한인 은행들이 나스닥 상장 대열에 합류했다. 2010년대 후반에는 PCB와 오픈뱅크 등 후발 은행들도 나스닥에 입성했다. 2020년대 들어서는 한인 1.5세들 만든 체인업체들이 나스닥 관문을 뚫고 있다.

■1기(198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


미주 한인 기업인으로는 최초 나스닥 상장이라는 역사를 쓴 인물은 텔레비디오 창업자 황규빈(86)씨다. 함흥 출신인 황씨는 유타주립대 졸업 후 포드 등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1975년 실리콘밸리에서 9,000달러의 자본금을 들고 게임용 모니터를 개발하는 ‘텔레비디오’를 차린다.

1983년 12월 텔레비디오(나스닥 심볼 TELVQ)가 나스닥에 상장됐을 때 공모가는 주당 18달러. 한인들의 미국 이민이 시작된 지 80년 만에 일군 쾌거였다. 그 뒤 주가는 40달러까지 치솟아 황씨를 한 때 미국 30대 부자로 만들었다.

종근당 설립자인 고 이종근 회장의 동생 이종문(94) 회장은 1975년 도미 후 1982년 실리콘밸리에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 시스템즈를 설립했다. 6년여에 걸친 연구 끝에 당시 세계 양대 컴퓨터 회사였던 애플-IBM 호환시스템을 개발했다. 그 여세를 몰아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심볼 DIMD)는 1995 11월 나스닥 시장에 진출했다.

이종문 회장은 상장 후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해 1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했다. 앰벡스 벤처그룹 회장으로 IT기업 투자와 함께 사회공헌 및 자선활동에 헌신했다.

한국에서 서강대를 졸업하고 UCLA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스티브 김(73·한국명 김윤정)씨가 직원 6명으로 네크워크 장비업체 자일랜을 차린 것은 1993년. 자일랜은 뛰어난 기술력으로 급속히 시장점유율을 높여갔다. 1996년 3월 자일랜(심볼 XYLN)은 총 발행주식 수 547만주, 주당 공모가 26달러에 나스닥에 상장됐다.

한국 아남그룹 고 김향수 창업주의 장남 김주진(86)씨가 운영하는 앰코테크놀러지는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 등 후공정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글로벌 기업이다. 선친인 고 김향수 회장이 한국에 아남반도체를 설립하자, 1968년 앰코테크놀러지라는 미국 법인을 만들어 연구개발과 판매를 담당했다.

차곡차곡 기술력을 쌓은 앰코(AMKR)는 1998년 5월 나스닥에 주당 11달러에 상장됐으며, 주가가 급등하면서 김씨는 2000년 포브스 선정 미국 100대 부호 94위에 오르기도 했다.


유리시스템즈 창업주 김종훈(62)씨는 1975년 14살의 나이로 메릴랜드주로 이민 와 명문 존스홉킨스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1992년 시스템간 능률적 전기 의사소통에 대한 연구를 위해 인터그레이티드 시스템즈 테크놀로지를 창업했고 1996년 자신의 딸 이름을 따 유리시스템즈로 사명을 변경했다.

그는 군에서 사용될 수 있는 음성과 영상 데이터 전송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유리시스템즈(YURI)는 1997년 2월 주당 12달러의 공모가로 나스닥에 첫 발을 내딛었다.

■2기 (1990년대 후반~2010년대 후반)

한인 은행들의 나스닥 상장 도전사는 한인 경제력 신장과 은행간 인수합병을 통한 합종연횡과 궤를 같이한다.

한인 은행 중에서 최초로 나스닥 상장 역사를 쓴 은행은 뱅크오브호프의 전신인 나라뱅크다. 1989년 설립된 미주은행의 후신인 나라뱅크는 한때 경영부실로 폐쇄위기까지 내몰렸으나, 구원투수로 투입된 벤자민 홍(90) 당시 행장의 노력으로 NARA라는 심볼로 1998년 1월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당시 공모가는 7달러.

설립 연도 기준으로 막내격인 나라은행 상장에 자극받아 윌셔, 한미, 중앙 등 한인 시중 은행들의 나스닥 상장이 뒤를 이었다. 윌셔스테이트뱅크가 1980년 설립됐을 당시 이사 15명 중 한인은 4명에 불과했다. 1986년 고석화 회장이 이사로 합류하면서 한인 은행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최대주주였던 고석화 이사장의 주도로 1998년 7월 WSBK라는 심볼로 나스닥 시장에 진출했다.

순수한 한인들의 자본력으로 1982년 설립됐던 한미은행은 2001년 1월 한인 은행으로는 세번째로 지주사인 한미 파이낸셜콥(심볼 HAFC)의 주식을 나스닥에 상장거래했다. 한미은행은 주식공모(IPO) 절차를 통하지 않고 장외시장(OTC)에서 거래시장만 나스닥으로 옮겼다.

지난 1986년 출범한 센터뱅크(중앙은행)도 지주사인 센터파이낸셜콥(CLFC)을 2006년 4월 나스닥에 상장했다. 나라, 윌셔, 한미, 중앙은 나스닥 상장 전후로 지주사를 설립해 타주 진출, 금융기관 인수, 경영 투명성 제고 등 제도적 기반을 갖춘 ’빅 4‘ 은행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2011년 나라뱅크와 센터뱅크의 합병으로 새 출범한 BBCN은 2016년에는 윌셔뱅크와도 합병, 뱅크오브호프(행장 케빈 김)로 간판을 바꾸고 LA 카운티에서 탑5로 규모가 큰 리저널 뱅크로 자리 잡았다. 케빈 김 행장은 지주사인 호프뱅콥(HOPE)의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후발 은행 중에선 2018년 3월 오픈뱅크(행장 민 김)의 지주사인 OP뱅콥(나스닥 심볼 OPBK)이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같은 해 8월에는 퍼시픽시티뱅크(행장 헨리 김)의 지주사인 퍼시픽시티파이낸셜콥(PCB)이 상장절차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나스닥에 입성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 지역 한인들이 투자한 자본으로 성장한 메트로시티뱅크(행장 김화생)의 지주사인 메트로시티 뱅크셰어(MCBS)도 이듬해인 2019년 10월 나스닥에 발을 내디뎠다. 한인 은행 중 남가주가 아닌 타주 기반 은행이 상장한 것은 메트로시티가 처음이다.

■3기(2020년대 전반)

한인 벤처 기업과 한인 은행이 주도하던 나스닥 상장 도전사는 올해 들어 1.5세 한인들의 거침없는 도전으로 이어졌다.

가장 최근에는 한인 제임스 최(59)씨가 운영하는 일본식 라면 체인업체가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됐다. 남가주 8개 지역에서 영업 중인 ’요시하루 글로벌‘(YOSH)이 지난 9일 나스닥 시장에 상장돼 첫 거래를 마친 것이다. 요시하루는 한인 요식업체 중에서 최초로 나스닥 상장기록을 세우게 됐다. 총 발행주식 294만주에 공모가는 주당 4달러.

이에 앞서 남가주에 기반을 둔 한인 커피 전문기업이 나스닥에 상장됐다. 제이 김씨가 창업한 리본커피(REBN)는 8월 중순 나스닥에서 거래를 시작했다.

가주 외환은행과 중앙은행, 오픈뱅크 등에서 근무하며 한인 은행을 비롯한 한인 기업들의 나스닥 상장 과정을 지켜 봤던 안상필씨는 “1세 위주의 벤처기업 성공신화에서 출발, 한인들의 자본력이 뒷받침 된 은행권을 거쳐 현재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한인 1.5~2세를 중심으로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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