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콜 클래식] 가면 내리는 ‘오페라의 유령’
2022-09-23 (금)
이정훈 기자
세기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이 내년 2월 35년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내린다는 소식이다. 가장 긴 공연, 가장 돈을 많이 번 공연으로 알려진 (사실 더 긴 공연은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공연 중인 ‘레미제라블’이며, 입장 수익도 2014년 ‘라이언 킹’에 추월당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뉴욕에서만 약 2천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고 수익만 13억달러를 거둬들였다. 전 세계적으로는 약 1억5천만명이 ‘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했고 비교적 소도시에 속하는 샌프란에서도 1993년부터 무려 5년 동안 약 3백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오페라의 유령’을 처음 본 것은 1998년 여름이었다. 아마도 ‘오페라의 유령’이 곧 막을 내리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샌프란에서 최장기 공연 신기록을 쓰고 있었던 작품 치고는 다소 늦은 감이 있던 감상 나들이였다. 장소는 다운타운 게어리가 끝에 있는 커런 극장이었다. 샌프란에 있는 3대 뮤지컬 극장(오피움, 골든 게이트, 커런) 중에서도 가장 낡은 극장이었다. ‘오페라의 유령’만 내리 5년동안 공연중이었기 때문이었는지 곳곳에 먼지가 수북했고 부서진 의자도 있었다. 낡은 복도를 올라 2층 맨 꼭대기에 자리를 잡았다. 2층이라지만 3층까지 있어서 C급은 아니었고 B급에 속하는 좌석이었다. 첫 관람 소감은 극의 내용 보다는 커런 극장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샌프란의 정경이 더 인상에 남았다고나 할까. 프로덕션은 소문만큼 그렇게 화려하지도, 매혹적이지도 않았다. 조금 음산한 분위기와 주인공(유령)이 마치 곡예하듯 극장 곳곳에서 출몰하는 것 외에는 특이한 점도 없었다. 유명하다는 1막 샹들리에 신(거대한 샹들리에가 바닥에 미끄러지듯 내동댕이 쳐진다)도 2층에서 봤기 때문인지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고 2시간반의 공연이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조금 인상에 남은 것이 있다면 음악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는 것이고 괴기스러운 작품이라기 보다는 상당히 로맨틱한 분위기가 시종 극장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자칫 호러물로 오해되기 쉽지만 사실은 로맨스 뮤지컬의 끝판왕이다. 주인공이 흉칙한 얼굴를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등장하지만 가면을 벗은 실체의 모습은 그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다. 원작 소설에서는 매우 흉한 얼굴로 등장하지만 뮤지컬에서는 가면을 쓰고 나오는 모습이 오히려 더 신비감을 자극한다. 추리 소설을 각색한 것 치고는 스릴이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고 칙칙한 분위기의 지하궁조차도 왠지 비밀스러운 로맨스의 장소로 비쳐질만큼 이 작품은 처음부터 남성 중심적인 어떤 도발적인 장면보다는 상처 있는 한 남성과 한 여성과의 로맨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제목때문에 극을 보는 사람들은 이 작품의 온화한 분위기에 놀라게 되며 추리극을 연상하는 사람도 별로 추리할게 없는 작품의 내용에 실망하게 된다. 다만 신데렐라를 꿈꾸는 한 여성이 백마 탄 왕자 대신 지상에서 가장 저주받은 남성, 그러나 자신을 가장 사랑하며 동시에 음악의 스타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꿈의 마술을 가진 자와의 환상적인 로맨스를 연상하며 보는 자에게는 ‘오페라의 유령’이야말로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가장 끌리는 마력의 뮤지컬은 아닐지 모르겠다.
이 극장에 유령이 산다… 이러한 제목으로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소설이 출판된 때는 1910년 파리에서였다. 플롯은 알려져 있다시피 오페라 하우스에 유령이 산다는 것이었다. 유령은 파리 국립 오페라 하우스의 5번 박스석에 매일밤 등장하는 미스테리 신사로서, 오페라 가수 크리스틴의 납치, 라울 드 샤니 자작의 실종, 그의 형 필립 백작의 사망 등의 사건이 일률적으로 일어나는 데 이 사건이 바로 선천적인 기형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가면의 신사, 즉 오페라의 유령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추한 외모때문에 사람들을 기피하는 오페라의 유령은 페르시아에서 마법을 배워 신출귀몰하는 능력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가수 크리스틴을 납치, 지하궁에서 ‘천상의 목소리’를 선물한다는 내용. 이작품은 86년에 제작, 10여년만에 6천만 관객동원에 성공했고 25년이 지난 2001년까지 전세계적으로 1억3천만명 이상이 관람했다. 이 작품을 2000년, 2004년 등 그 후 3차례나 더 보게 된 것은 ‘오페라의 유령’이 분명 보는 맛이 있는 뮤지컬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면 뒤의 실체라고나 할까. 보면 볼수록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매혹은 마치 뮤지컬이라는 탄산음료를 마시면서도 왠지 고급 샴페인을 마시는 듯한 느낌으로 취하게 하는 가면의 역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오페라의 유령’이 곧 가면을 벗게 된다. 볼만한 사람은 이제 다 보았고 신비감도 사라졌다. 가면을 벗은 ‘오페라의 유령’의 실체… 그 최면은 어느 정도 지속될까. 뮤지컬의 아류로서 곧 사라질지, 아니면 고전으로 남아 앞으로 오페라 하우스에 계속 출몰할지… 그 가면의 역할… ‘오페라의 유령’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