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2022-09-14 (수)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폭염과 태풍과 그리고 가뭄과 홍수로 온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남가주는 한 달 가까이 연일 100도를 웃도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온 땅이 펄펄 끓고 있었다. 한국을 통과한 태풍 힌남노에는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이번 폭염은 이곳에서 41년 살아오는 동안 겪은 가장 길고 힘든 더위였다.
가깝게 지내던 후배 이내운 씨가 지난봄에 아들네 식구와 함께 훌쩍 시애틀로 옮겨갔다. 거기서 간간이 정겨운 소식과 함께 사진을 보내주는데 울창한 숲 속을 걷다가는 깨끗한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풍경이 더없이 부러움을 준다. 산에 가서 블루베리와 블랙베리를 따기도 했고 바다에 나가 새조개와 바지락조개, 굴을 캐왔다는 자랑도 이어간다. 그러나 그 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하늘을 찌를 듯 쭉쭉 자란 용맹스런 소나무의 자태다.
지금은 아파트 근처 벙커 힐의 빌딩숲을 산책로로 정해놓고 있지만 이사하기 전에는 가까이에 있던 사우스코스트 보태닉 가든의 숲속 길을 자주 찾아갔었다. 그곳에 가면 여름철 로즈 가든과 철따라 피는 야생화 숲길도 좋지만 늘 한결같이 맞이해주는 ‘소나무 길’이 단골 코스였다. 사시사철 푸르고 싱싱한 소나무 가지와 솔잎에서 뿜어주는 피톤치드의 향내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소나무는 본시 ‘나무의 우두머리’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송백(松柏)은 백목의 장’이라 황제의 궁전을 수호하는 나무라 하였는데 그보다는 많은 이들이 역경 속에서도 끈질기게 절개를 지켜나가는 소나무의 성품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나도 소년시절에 혼자 독야청청하기보다 더불어 그 기개를 펴나간다는 뜻으로 아호를 ‘송파(松波)’라고 짓는 객기를 부리기도 했었으나 1988년 서울의 한 자치구 명칭에 ‘송파구’가 생기면서는 바꿔버렸고 지금은 같은 연배의 오래된 교회 친구들 모임에 ‘소나무’ 이름을 쓰고 있다.
지난 3월 한국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했을 때의 바람은 아마도 그에게서 소나무 같은 싱싱함을 기대했을 런지 모른다. 처음에 그는 기성정치인에게서 봤던 노회한 모습이 아니었고 공정과 상식과 법치를 강조하는 신선함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 일찍 본색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에게는 국가를 운영할만한 어떤 비전이나 역량도 없었고 정직하거나 솔직한 품성도 보이지 않았다.
민생과 외교와 남북 관계의 어려움이 태풍처럼 밀려오고 있는데 고작 한다는 일이 자기 당의 대표와 죽기 살기로 막장싸움이나 벌이고 국정난맥의 원인이 된 본인과 부인의 허물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모습이 국민들 눈에 섬뜩한 배신으로 비칠 뿐이다. 거기에다 거대 야당과는 협치는 커녕 밤낮으로 칼춤만 들이대고 있으니 대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자는 것인지…. 집권당의 비대위에 이어 국가마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난 달 미국 대형교회의 하나인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가 은퇴를 했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한 설교의 제목이 ‘끝을 염두에 두라’였다.
남산위의 저 소나무도 그립고, 시애틀 마운틴 레이니어에 있는 소나무도 보기 좋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는 기억에 남는 노래다. 대지가 타들어 가는 폭염의 계절에 다시 시들지 않는 소나무의 기개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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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