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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민주주의의 병기창’, 그 의미는…

2022-09-12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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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수백만개의 미사일과 포탄을 구입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다.

전쟁은 변화를 불러온다. 푸틴의 망상에서 비롯된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렇다. 그 뚜렷한 변화는 디커플링(decoupling)의 심화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러시아 중심 권위주의 독재세력 블록과 미국·유럽 중심 자유 민주주의 블록 간의 디커플링에 한층 속도를 붙였다.

이와 함께 세계는 더욱 선명하게 두 진영으로 분리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러시아-중국-북한’ 대 ‘미국-일본-한국’의 첨예한 대결구도로 굳어지고 있다.


이런 정황에서 나온 것이 이 뉴욕타임스의 보도다. 러시아가 얼마나 다급한 처지에 몰렸으면 북한에 손을 내밀었을까 하는 것이 이 보도의 요지로 보인다. 이 보도는 그러나 다른 앵글을 통해 보면 또 다른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전 성격의 대리전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러시아 지원, 더 나가 우크라이나 참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되고 있다는.

여기서 필연적으로 던져지는 질문이 있다. ‘그러면 북한과 대척점에 있는 한국은…’이 바로 그 질문이다.

K-팝, K-시네마, K-드라마. 한류 확산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행어가 된 말들이다. 거기에 최근 들어 하나가 덧붙여졌다. K-디펜스(defense)다.

한국의 방산 수출이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00년 세계의 무기수출국 리스트에서 한국은 31위에 랭크됐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무기 수출은 2017~2021년에 2012~2016년에 비해 무려 177%가 늘어 8위에 랭크됐다.

“마치 터보엔진이라도 장착한 듯이 무서운 속도로 진척되고 있다.”포린 폴리시의 보도다. 한국의 방위산업은 우크라이나전쟁과 맞물려 혁명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2020년까지 연 20억~30억 달러 수준이던 한국의 방산 수출은 지난해 70억 달러를 돌파해 사상최고를 기록했다. 그러던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 한 올해 들어 폴란드 대박 수출(57억6,000만 달러)을 제외하고도 100억~150억 달러의 수출이 기대 되면서 세계 5위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새로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중추국가의 해외정책의 쇼케이스로 방산수출을 적극 추진, 세계 4위를 목표로 내걸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진격하고 있는 K-디펜스. 관련해 안보전문 매체 ‘워 온 더 록스(War on the Rocks)’는 한국에 ‘민주주의의 병기창’이란 호칭을 부여했다.

1940년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나치독일 공격에 수세에 몰린 영국을 지원하기 위한 무기 대여법안(Lend-Lease Bill)의 필요성을 알리면서 미국을 ‘민주주의의 병기창’으로 비유한 것으로, 이는 대단한 찬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끊임없는 군사적 위협 등의 상황을 맞아 재무장이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EU(유럽연합)는 무기재고가 이미 바닥났다. 따라서 나토 동맹국들은 하나같이 미국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인도 태평양지역의 국가들도 마찬가지 사정이다. 때문에 실제 미국의 무기 판매 계약고는 7월15일~8월2일 두 주간 2,000억 달러가 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렇지만 계속 몰려드는 무기 공급 요청에 미국은 숨이 가뿐 처지에 몰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아홉 번이나 치장 무기를 빼내 공급할 정도로 자체 무기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처럼 워싱턴이 유럽과 인도태평양지역을 모두 커버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에서 한국이 서방국가들의 주 무기 공급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K2 전차, K9 자주포, 천궁-II 방공 미사일, FA-경공격기 등 미제 무기에 성능이 뒤지지 않는 병기를 쉬지 않고 찍어내는 한국의 병기창에는 추가로 전자전도 가능한 KF-21 전투기, 미래형 경항모, KSS-III 잠수함 등 첨단무기들이 속속 추가 될 예정이다. 이 K-병기창은 우크라이나 지원은 물론,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수행에 K-병기창은 보완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미국의 동맹국 중에서도 이너서클인 호주와 나토 동맹국인 폴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등에 한국이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무기를 공급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러시아와, 중국과 최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미국의 동맹국들을 지원함으로써 자유 민주주의진영 강화에 한국은 적극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전폭적인 군사적 지원을 하고 있는 폴란드에 대대적 무기 공급을 함으로써 한국은 이미 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지원해왔다는 것이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분석이다.

무엇을 말하나. ‘전략적 모호성’- 미국과 중국 관계에서 줄다리기를 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자주 써오던 말이다. K-병기창이 ‘민주주의 병기창’으로 변모하면서 ‘전략적 명료성’이 ‘전략적 모호성’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의 기술 및 군사동맹 강화를 근간으로 멀리는 러시아를, 가까이는 중국도 견제하는 군사강국이자 당당한 서방 진영의 일원으로 한국은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또 다른 주요 변화의 하나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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