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내가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정확히 15년차가 되는 해이다. 다른 이들에게 15년차라는 얘기를 하면, ‘전문가이시네요’ 라던가 ‘이제 수업 준비는 그냥 식은 죽 먹기겠네요?’ 라는 대답을 듣곤 한다. 하지만 실상은, 이제 막 새 학기 3주차를 넘긴 지금, 나는 티칭을 처음 할 때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이 무겁기도, 너무 어렵고 두려워서 회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이번 학기, 나는 사회 언어학이라는 새로운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사회 언어학이란 응용언어학의 한 분야로, 사회와 언어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가에 대해 다방면으로 연구하는 분야인데, 나의 관심 연구 분야와 중첩되는 부분이 많기에 이번 한 학기동안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언어와 리터러시(literacy)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사람들과 권력구조와 어떻게 맞닿아있는지를 얘기하고 같이 공부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쁜 마음이 컸다. 이 기쁘고 신나는 마음은 곧 복잡한 감정으로 뒤섞여버렸다.
학기의 시작은 학생들이 자신의 삶에서 언어가 어떤 의미로 존재하고,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어떻게 쓰이며,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언어를 바라보고 있는지 성찰하는 활동에서 출발했다. 유색인종의 학생이 많은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언어나 문화에 관한 성찰 활동을 과제로 내줄 때마다 많은 학생들에게 듣는 코멘트중의 하나는 자신의 언어 사용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사실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과제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과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과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지 질의 응답시간을 가지는 도중,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이야기했다. “백인 여자인 저에게는 다른 언어를 쓴다든가 같은 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없는데요, 그냥 영어만 쓰면서 자랐으니까요. 그냥 지루한 얘기밖에 없어요. 좀 조언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 학생의 질문이 끝나자 아주 불편한 적막이 흘렀다. 몇몇 학생들은 눈을 옆으로 흘기며 불쾌한 표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찰나의 순간, 내가 입을 열기 직전, 한 학생들이 손을 들고 이야기했다. “이 프로젝트는 성찰이 목적이니까 왜 본인이 자기 언어가 지루한 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때?” 뒤이어 다른 학생들도 동참해서 비슷한 조언을 주었다. 나도 이어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실천하는 삶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만은 아니며 그것이 이 과제의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이후, 또 한 번의 토론시간에서 사건은 일어났다. 어떻게 백인 위주로 이해되고 성립된 언어에 대한 기준이 다른 이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데 쓰이는 가에 대한 시청각 자료들을 읽고 듣고 난 후의 토론이었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이야기한다. “이게 폭력적이라고요? 이런 것들은 너무 사소한 문제 아닌가요?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 젠더 갈등에 관한 문제 같은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니에요?”
당황스러운 마음과 솟구쳐 오르는 화를 이성으로 가라앉히고, 어떤 말로 대답을 해야할 지 생각하며 숨을 고르는 동안 이미 학생들은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식의 관점은 사람과 문화를 캐릭터로만 국한시킨다”부터 “다양한 문화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누구의 관점에서 표현하는 가가 폭력적일 수 있다”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의 의견을 들었다. 이런 대화가 이어가지는 와중에 어떤 학생도 소리를 지르거나 다른 이들을 무시하는 태도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지는 않았다.
수업 후 많은 학생들이 나를 찾아왔다. 아주 불편했지만 열린 태도로 토론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반응도, 이런 기회를 통해 소위 말하는 “어려운” 주제에 대해 자신과 생각이 다른 학생들의 생각을 엿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또 나름 이리저리 튀어 나오는 감정들을 잘 핸들링 한 것 같다며 뿌듯해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여러가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며 연구실로 돌아가는 동안 생각했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배움과 가르침이란 원래부터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어렵고 두려운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 나는 이 어려워서 마냥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하려고 한다. 안전한 공간에서 느끼는 안전함이 항상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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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휴스턴대학교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