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172m 정령치 휴게소 정면으로 지리산 능선이 장엄하게 이어진다. 백두대간 탐방로의 일부로 만복대나 고리봉까지 짧은 구간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남원 주천·산내면 정령치와 뱀사골계곡>
높고 넓고 깊다. 1967년 국내 최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경남 하동·함양·산청, 전남 구례, 전북 남원까지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다.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을 중심으로 20여 능선과 계곡을 품었고, 둘레는 320여㎞에 이른다. 한두 곳 둘러보고 지리산에 다녀왔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서북 언저리의 남원 정령치는 지리산 능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코끼리 뒷다리 만지는 격이지만, 주변의 짧은 트레킹으로 지리산의 매력을 맛볼 수도 있다.
변화무쌍한 정령치 날씨. 하얗게 핀 억새 뒤로 지리산 능선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억새 핀 정령치에는 이미 가을바람이
정령치는 남원 주천면과 산내면 사이에 있는 고갯마루다. 어지러울 정도로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오르면 해발 1,172m에 위치한 휴게소에 닿는다. 휴게소 자체가 전망대다. 바람만 서늘한 게 아니라, 눈높이로 지리산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왼쪽의 중봉 천왕봉 제석봉에서 오른쪽의 토끼봉 삼도봉 반야봉까지 하늘과 맞닿은 지리산 주 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산등성이가 일직선에 가까워 어떤 이는 풍광이 단조롭다고 평가한다. 산줄기가 첩첩이 겹쳐 보이는 게 아니라서 원근감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1,500~1,900m에 이르는 능선이 워낙 압도적이라 산 아래로 시선이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휴게소 한쪽에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비가 세워져 있다. 천왕봉 일출, 노고단 구름바다, 반야봉 저녁노을, 벽소령 시린 달빛 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정령치는 빠졌다. 파노라마 능선이 품은 절경을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고, 언젠가는 가보리라는 로망을 자극하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라고 시는 마무리한다. 더는 내려갈 곳 없는 바닥에서 삶의 의지를 건져 올릴 수 있는 어머니의 품, 생명의 땅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고산인 만큼 날씨 변화가 무쌍하다. 25일 해 질 무렵 올랐을 때 설핏 보이는가 싶던 능선이 바로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바람 따라 빠르게 고개를 넘는 안개 속에서 30분 넘게 기다렸지만 시야는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어졌다. 아쉬움에 다음 날 아침 다시 찾은 정령치는 거짓말처럼 맑게 개어 있었다. 고갯마루에는 이미 억새가 피었고, 능선 맞은편으로는 멀리 남원 시내까지 말갛게 모습을 드러냈다.
휴게소 뒤에 백두대간 이정표가 있다. ‘백두산 1,363㎞’ 산행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천왕봉 36㎞’ 종주는 꿈으로 남겨 놓는다. 남쪽 만복대까지는 2㎞, 북쪽 고리봉까지는 0.8㎞이니 크게 힘들이지 않고 다녀올 만하다.
고리봉 자락에 개령암터 마애불상군이 숨겨져 있다. 그 옛날부터 사람의 발길이 잦았다는 증거다. 마애불상군이라 부르는 것은 커다란 암벽에 12개의 크고 작은 불상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그대로 닮았다. 흔히 보는 불상처럼 매끈하지도 윤곽이 선명하지도 않다.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됐으니 훼손도 심한 편이라 맨눈으로는 2~3개의 얼굴을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정령치에서 마애불상군까지는 약 500m, 높낮이가 거의 없는 순탄한 길이다. 그럼에도 억새와 넝쿨 식물, 활엽수와 침엽수림이 터널을 만들어 지리산의 다양한 생태를 가늠할 수 있다. 마애불 바로 아래에는 제법 평평한 습지가 형성돼 있다. 어둑한 잣나무 숲 아래가 들풀로 덮여 고요하고 신비롭다. 주변에서 기와와 자기 조각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와운마을 ‘천년송’까지… 뱀사골 깊은 골짜기 맛보기
정령치에서 달궁계곡과 나란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뱀사골계곡이 나타난다. 탐방로는 반야봉 능선인 화개재까지 9.2㎞, 왕복하려면 단단히 마음먹고 하루를 잡아야 한다. 초보자는 엄두를 내기 힘든 길이다.
입구에서 약 2.5㎞ 지점에 계곡에서 유일한 와운마을이 있다. 구름도 누워 쉰다는 산골짜기로 이곳까지는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계곡에서 마을로 올라가는 구간을 제외하면 순탄한 길이다. 더구나 절반은 계단이 없는 무장애 덱이어서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다.
뱀사골, 왠지 이름이 으스스하다. 골짜기가 뱀처럼 구불구불해서 붙은 지명이라는 해석과 함께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1980년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주민들에게 채록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반대하던 지리산 산신령이 그가 등극한 후 귀양을 가게 된다. 그 틈에 선녀로 둔갑한 이무기가 해마다 스님을 한 명씩 잡아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신선이 돼 하늘로 오른다고 생각한 어느 스님이 서울의 정승 친구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갔더니 멋진 장삼을 선물했다. 독성이 있는 비상을 숨긴 옷이었다. 이를 모르고 스님을 낚아챈 이무기는 스님과 함께 골짜기에 떨어졌다. 말 그대로 뱀(이무기)이 죽은 골짜기다. 친구인 스님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정승은 절을 불태우고 그곳을 반선(返仙), 신선이 되어 올라간 곳이라 불렀다. 뱀사골 입구에 위치한 마을이다.
계곡 입구에 ‘지리산 충혼탑’이 제법 큰 규모로 세워져 있다. 뱀사골을 비롯한 지리산 골짜기는 빨치산이 한국전쟁 이후까지 저항한 곳이다. 충혼탑은 1948년부터 1956년까지 진행된 토벌작전 도중 숨진 민·경·군 7,283명의 영혼을 위로하는 시설이다. 이 깊은 골짜기도 분단과 동족상잔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을 피해가지 못했다.
뱀사골계곡은 거칠면서도 푸근하다. 입구가 예상외로 널찍하다. 여기저기 뒹구는 집채만 한 바위는 세월을 비껴간 듯하다. 억겁의 시간이 닳고 닳았을 텐데도 투박하고 성글다. 큰 폭포가 없는데도 험한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계곡을 가득 채우고 남을 정도다. 반면 계곡에 바짝 붙어 조성된 탐방로는 한없이 순하다. 발걸음도 덩달아 가볍다. 물가로 휘어진 나뭇가지가 녹색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데, 조금씩 색을 입은 단풍잎과 노랗게 떨어진 낙엽도 보인다.
와운마을은 요룡대 바위를 지나 왼편 산자락에 위치한다. 주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차도를 따라 제법 가파른 길로 약 1㎞ 걸어야 한다. 와운마을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 마을 뒤편 언덕에 풍채 좋게 가지를 늘어뜨린 ‘지리산 천년송’을 보기 위해서다.
실제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소나무 하면 떠오르는 멋들어진 수형 그대로다. 키 20m, 가슴높이 둘레 4.3m,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18m에 달한다. 흠잡을 데 없이 균형 잡힌 몸매다. 천년송은 20m 뒤편의 또 한 그루와 짝을 이루고 있다. 예상과 달리 멋진 나무가 ‘할매송’, 뒷전으로 밀린 나무가 ‘한아시(할아버지)송’이다. 오랜 세월 마을을 굽어보고 있으니 경외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할아버지 나무 뒤편에 제단이 있다.
구룡계곡 초입의 구룡폭포. 암반 위로 쏟아지는 물소리가 계곡에 가득하다.
■요란한 물소리에 명창이 득음한 곳, 구룡계곡
정령치에서 북측 주천면으로 내려가면 구룡계곡이 있다. 계곡 상류와 하류 두 곳에 주차장이 있어서 편도로 걸을 수 있다. 3.1㎞, 약 2시간이 걸린다. 탐방로는 내려간다고 내리막만 계속되는 것도 아니고, 올라간다고 오르막만 있는 것도 아니다. 흡사 열대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협곡의 계단과 바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이어진다. 계곡은 뱀사골보다 좁지만 바위는 더 거칠고 물소리도 요란하다.
전체 구간을 걷기가 부담스러우면 탐방로 입구만 걸어도 멋진 풍광을 만날 수 있다. 구룡계곡은 아홉 마리 용이 아홉 군데 폭포에서 한 자리씩 터를 잡고 노닐다 승천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상류 주차장에서 약 300m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웅장한 물소리가 협곡에 메아리친다. 높이 30m에 이르는 구룡폭포가 한눈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힘차게 떨어지고 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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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글·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