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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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와 투명 인간

2022-09-03 (토)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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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여자 환자분께서 버스를 타고 병원에 오시다가 길거리에서 반지를 날치기 당할 뻔했던 일을 이야기하셨다. 무심코 걸어가는데 괴한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반지를 빼앗으려 했으나 재빨리 손을 빼돌려서 사고를 모면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 손가락에 있는 반지가 유난히 반짝여 보인다고 하셨다. 마침 나는 얼마 전에 때 묻은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를 보석상에서 잘 닦았던 터였다.

반지는 끝없이 돌아가는 동그라미 모양이기에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여 결혼예물로 쓰인다. 반지에 세팅되는 보석도 여러 종류이겠지만 다이아몬드의 인기는 여전하다. 다이아몬드는 지구의 깊숙한 마그마 속에서 탄소에 막대한 열과 압력이 가해져 생성된다. 땅속 깊이 130킬로미터 아래에 매장되어있으며 땅위에서 발견되는 다이아몬드는 화산 분출 시 화산과 함께 땅위로 솟아오른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99.95%가 탄소 성분이며 미량의 다른 성분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예로, 질소가 함유되어있으면 노란 빛을 띠게 된다. 다이아몬드 1캐럿을 얻기 위해서는 평균 250톤의 자갈과 바위를 캐야할 만큼 채취가 어렵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결혼반지로 쓰이게 된 것은 1477년 오스트리아의 맥시밀리언 대공이 프랑스 버건디 왕국의 공주에게 청혼할 때 사랑의 약속으로 주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영원한 사랑의 상징인 반지에는 신비한 이야기도 많이 얽혀있다.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전설로, 리디아라는 왕국에 성실하고 바른 기게스(Gyges)라는 목동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고대의 땅’이라 불린 곳에서 양을 치던 중 갑자기 천둥 번개와 폭우가 내렸고, 지진이 발생했다. 이윽고 지진과 폭우가 지난 후 겨우 정신을 수습한 그가 양 치던 곳을 보자 땅이 갈라져 있었고 이상한 터널이 있었다. 그가 터널 안으로 들어가자 안이 빈 청동 말 상(像)이 있었다. 다가가보니 그 청동 말에 작은 문이 있었고 그 안에 들어가자 한 거인의 시신이 놓여있었다. 그 거인은 몸에 아무것도 걸친 게 없었고 손가락에 기이한 반지가 있었다. 기게스는 그 시신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 후 기게스는 목동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었는데 우연히 그가 손가락에 끼고 있는 그 기이한 반지의 거미발을 몸 쪽으로 돌리자 놀랍게도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놀란 그가 반지를 원래 방향으로 돌리자 다시 그가 보이게 되었다. 신기해진 그는 몇 번을 시험하고 나서 이제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을 확신한 후 목동으로 있던 곳을 떠났다. 그는 왕에게 가는 사신들을 만나자 그 틈에 몰래 끼어 왕궁으로 들어갔고 왕궁에서 아름다운 왕비를 본 그는 흑심이 생겼다. 그래서 반지를 작동해 보이지 않게 된 그는 유유히 왕비의 침실로 들어가 왕비와 정을 통하게 되었다. 이제 반지의 힘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얻게 된 기게스는 권력의 야심이 생겨 이제 연인이 된 왕비와 공모하여 왕을 암살하기로 하였다. 기게스는 다시 반지를 이용해 왕의 침실로 갔고 잠든 왕을 암살하고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와 자신이 왕이 되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인간의 본성은 악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이야기이다. 한때 굉장한 열풍을 일으켰던 영화 ‘반지의 제왕’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절대 힘을 주는 반지’를 두고 영웅이든 요정이든 심지어 성자도 악의 물에 물든다는 것.

병원에서 많은 환자들을 보면서 죽은 사람에게는 반지가 없음을 보았다. ‘절대 힘을 주는 반지’를 갖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죽을 때는 반지를 버려야함을 깨닫는다. 만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투명인간이 될 수만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어 할까? 주로 욕정을 채우고, 탐욕을 이루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계책이 아니겠는가?

기게스의 반지처럼 나도 혹시 투명인간이 될 수 있나 하고 끼고 있던 반지를 이리저리 돌려보았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사람들의 눈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또렷이 보고 있었다. 그러니 허황된 꿈은 버리고 나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야한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한결같이 정직하게 살아야한다. 평화롭고 욕심 없는 삶이 소중하며 행복이다.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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