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나에게 24시간 동안 한 공간에 갇혀 하루를 보낼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고민 없이 책방을 선택할 것이다. 여행할 때마다 꼭 그 지역의 작은 책방들을 찾아가볼 정도로 나에게 책방은 책을 살 수 있는 곳, 그 이상을 말해준다.
무명작가들의 지역 책들이 아기자기하게 전시된 코너, 재치 넘치는 이달의 책 추천리스트를 적고 있는 직원, 낡지만 소장 가치가 있는 중고 서적들과 LP들이 전시된 벽 한쪽, 은은하게 공간을 채워주는 노랫소리…. 이런저런 면모를 통해 그 동네를 맛보기로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책방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니 어쩌면 가장 기대하는 것은, 바로 책방에 처음 들어서자마자 맡게 되는 공간의 향기다.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나는 언제나 책방에서 가장 좋은 향을 맡았다. 그것이 책이라는 소재 때문인지, 아니면 드나드는 사람들의 체취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꿈에도 향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바로 책방의 향기일 것으로 생각했다.
어릴 적 내가 자랐던 동네에는 매주 하루 이동식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봉고차 한 대가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피리 부는 소년처럼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낡은 봉고차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요술의 공간처럼 수백 개의 책이 빼곡하게 쌓여있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매섭게 생긴 주인아저씨 눈치를 보느라 발을 동동 구르며 일주일 동안 읽을 책들을 재빠르게 선정하곤 했다. 그렇게 고심 끝에 빌린 책 몇 권을 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마치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가는 것만 같은 설렘이 배 안에 가득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쉴 때도, 잠들기 전까지도 책을 놓지 못하고 상상의 바다를 헤엄치며 살았던 나는 사실 여전히 그 버릇이 남아있는 것을 느낀다. 아직도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는 부피가 크더라도 책 한 권씩을 꼭 가방에 넣어두고, 차 안에도 역시나 좋아하는 책 한 권을 꼭 넣어두는 편이다. 마치 비상식량을 미리 준비하는 마음으로.
놀랍지 않겠지만, 나는 지금도 책방에 와 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의 다양한 삶이 모두 담겨 있는 이곳에서 나는 지금 나의 시간을 닫고 수만 명의 생각과 상상이 만들어낸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요리, 여행, 물리, 건축, 소설, 비소설, 인문학, 종교…. 이제는 누구나 원하면 쉽게 온라인 서적을 구매할 수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두 발로 직접 걸어 다니며 나의 두 손으로 책 한 권을 뽑아 그 책의 재질을 느끼고 한 장씩 넘기며 꾹꾹 담긴 글자를 읽는 이 재미를 도대체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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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프리랜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