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전문가 에세이] 요가 교실에서

2022-08-25 (목)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크게 작게
뮤지엄 공간에서 요가를! 미국, 유럽 대도시 뮤지엄들이 유행처럼 요가 클래스를 열고 있다. 오픈 스페이스, 최고의 예술 작품, 그리고 우리 몸이 문화공간 안에서 함께 호흡한다(museem.com). 나도 아침마다 코리아 타운의 한 화랑에서 열리는 요가 교실에 등록했다. 이 무거운 몸뚱이가 두 팔로 지구를 떠받치며 물구나무를 서볼 수 있을까? 종이 접듯 허리를 반으로 접어 코끝과 엄지발가락이 만난다면 마침내 내 몸은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갈까?

몇 년 전 허리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울끈불끈 근육이란 전혀 믿을 만 한 게 못되어서, 병원침대에 누워 지낸 일주일 만에 팔 다리 머슬은 두부처럼 물렁으로 바뀌었다. 그만 하기 다행이라며 퇴원 서류에 사인을 할 때 담당 의사가 신신당부했다. “당신의 몸은 이제부터 하나의 통나무라고 생각하세요. 일어나고 누울 때, 통나무 굴리듯 온몸을 천천히 굴리세요.”

허리 수술 이후 다리 신경이 마비되어 이전에 즐기던 운동은 고문이 되었고 날렵하던 몸동작은 그야말로 야적장의 통나무 수준이다. 하루에 1밀리씩 자란다는 신경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세월! 희망을 가져봤고 인내를 가져봤고 순응을 가져봤다. 실망도 겪었고 좌절도 겪었고 포기도 겪었다. 운동선수들이 큰 부상을 입으면 정신적 충격으로 종종 겪는다는 만성섬유근육통증(Fibromyalgia) 때문에 나 역시 한동안 정신적 슬럼프를 경험했다.


겉보기엔 멀쩡. 온몸에 안 아픈 지점이 없을 만큼 심한 통증을 느끼는데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일조차 고통이다. 살에 닿는 이불깃도 아프다. 가족도 모르는 내 고통을 알아줄 이, 그 누구랴?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셀프 헬프’ 그룹을 찾아보니 ‘미트 업’(Meet up) 그룹이 수백 개. 회원들끼리 온라인에서도 투병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포스팅과 코멘트는 나를 실망시켰다. 포틀랜드 A멤버; 15년 째 이 고통을 겪고 있어. 오늘 하루는 좀 나을까? 간밤엔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어. 인디오 B멤버; 아파서 움직일 수 없는 나에게 남편이 게으르다 말하네. 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 우린 결국 싸웠어. 말다툼하는 입만은 아직 아프지 않거든.

나는 닥터 B.J. 밀러의 책 ‘죽음에 직면하기 위한 초심자 안내서’(A Beginner‘s Guide to the End)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그는 찬란한 인생의 시작점 18세, 스탠포드 합격통지서를 받은 이튿날 기차 고압선 사고로 4지 중 3지를 잃었다. 두 다리와 왼팔을 절단하는 수술과, 2만 볼트 고압전류가 지나간 온몸이 쉴 새 없이 불타는 고통을 겪어야했던 병상에서 이 청년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웠을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있기’를 선택하고 ‘마지막’을 껴안게 되었을까?

그는 현재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암병동의 호스피스 및 완화의학 의사이며 내 컴퓨터 배경화면 주인공이기도 하다. 건강하던 몸이 어느 날 불구가 되는 것,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오는 것,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피할 수 없더라도 마지막까지 인간 존엄성을 지키며 ‘잘 살아있기’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환자들이 기계 연명장치에 매달려 생을 마감하지 않기를 바란다. 투명한 햇살과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도록 환자에게 자연을 전한다.

아직도 ‘통나무’ 페이즈에 있는 나에게 요가는 힘든 도전이다. 그러나 납작한 시체자세를 하고 누웠을 때, 팔다리가 후덜덜 떨리는 산 자세를 하려고 몸을 꺾을 때, 화랑 벽에 기대고 선 미술작품들이 나에게 말을 건다. 숨을 쉬어…… 힘을 빼…… ‘지금’을 알아차려(Be Mindful)….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