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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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산불

2022-08-19 (금) 권순연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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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불청객 화마! 반기지도 않는데 또다시 찾아와 엄청난 피해를 끼친다. 산불은 기후변화로 인해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인재일 경우도 많다. 불법 불꽃놀이, 캠핑장과 바비큐 시 남긴 작은 불씨, 낙후된 PG&E 송전선에서 튄 불꽃 등 부주의와 안일한 대응으로 수천수만 에이커의 산림이 불타는 대규모 산불로 번지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고 한 마을을 통째로 삼켜버린다. 불타서 재만 남은 집터에서 눈물짓는 사람들의 아픔이 계속 되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화마를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은 아주 작다. 결국 모든 걸 다 태우고 끝이 난다.

보통 몇백 년에서 많게는 이천년 동안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세쿼이아 나무도 일부 화마에 희생되고 위험에 처해있는 상태다. 국립공원 요세미티에서 본 세쿼이아 나무는 쭉쭉 뻗은 큰 키로 신사 같은 자태를 뽐내며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었다. 그 나무 한 켠에 선 사람들이 작은 존재로 다가오는 웅장함을 한껏 뽐내며 세월을 이겨낸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난다. 요세미티 세쿼이아 나무가 울창한 숲에 들어서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해 아름다운 장관이 펼쳐진다. 내가 좋아하는 그 나무들을 바라보면 왠지 모를 에너지가 솟구쳐 오른다. 그 나무들은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뒤숭숭해도 침묵으로 일관하며 오로지 한 길 하늘만 바라보며 청청하기만 하다.

매년 여름이 오면 겁부터 난다. 어김없이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제 산불 연기 속에서 지내는 일상도 익숙해진 듯하다. 산불이 발화해 진행되는 곳과 그 주변 지역은 물론이고 서부 산불 연기가 대류권 상부의 제트기류를 타고 동부까지 흘러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이제 산불은 미 전역에서 피할 수 없는 위기가 된 것이다. 북가주 대형 산불로 인해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지역 하늘이 주황색 화염으로 뒤덮여 한낮에도 빛이 제대로 들지 않은 그런 날들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 캘리포니아를 떠나 타주로 떠나는 주민들이 산불 연기를 이주 이유로 꼽기도 했다. 북가주 대기권이 오염 없이 맑았다는 10여년 전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진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들이 됐다.

<권순연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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