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기어이 해냈다. 기후변화 대응책에 의료개혁안을 곁들인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지난 일요일 상원을 통과했다. 이 법안은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을 무난히 통과한 후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법적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건 그야말로 ‘대박’ 사건이다. 사실 법안 자체만을 놓고 보면 기후재앙을 막기에 충분치 않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올바른 방향으로 내딛은 거대한 첫 걸음으로, 향후 수년에 걸쳐 더 많은 조치를 끌어내는데 필요한 초석을 깔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새로 제정될 이 법을 매개삼아 그린 테크놀로지의 진전이 가속화될 것이다. 게다가 이에 따른 경제적 혜택이 관련 법안의 추가 입법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고,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하는 글로벌 차원의 노력을 이끄는데 필요한 신뢰를 미국 측에 부여할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성과를 폄훼하려는 냉소주의자들도 적지 않다. 일부 좌파진영 인사들은 이 법안이 환경보호 무늬만 찍혔을 뿐 실체는 화석연료산업체에 주는 선물이라고 깎아내렸다. 새로운 법안을 한 목소리로 반대한 공화당은 평소와 다름없이 ‘방만한 지출’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며 고래고래 악을 쓴다. 그러나 현장의 에너지와 환경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입법성과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신중하기로 이름난 이코노미스트들 역시 대규모 지출법안이 인플레이션에 끼칠 영향을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우선 환경측면부터 살펴보자. 필자가 만나본 많은 사람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초 ‘더 나은 재건계획’을 통해 밝힌 환경관련 아젠다가 이번 법안에서 희석됐다고 지적한다. 결국 민주당으로선 조 맨친 의원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대대적인 양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논란을 부른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지원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화석연료 업계에 주는 큼직한 선물이 아닐까?
하지만 에너지 분석가들은 이런 양보가 기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청정에너지에 대한 세금공제 혜택에 의해 완전히 묻혀버린다고 지적한다. 프린스턴 제로 연구소가 취합한 리피트 프로젝트(REPEAT Project) 보고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배출가스 감소량과 ‘더 나은 재건계획’(B.B.B.) 하원안에 담긴 배출가스 감소량을 맞비교했다. 보고서의 추산에 따르면 2035년까지 I.R.A.는 B.B.B.가 이루었을 배기가스 감소량의 90%를 줄이게 된다. 다시 말해 바이든의 기후 정책은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살아남은 셈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시작부터 바이든 행정부는 당근과 채찍 중 당근만을 사용하는 기후정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잘못한 일에 벌금을 매기는 게 아니라, 잘한 일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를 테면 행정부의 기후정책이 탄소세로는 불가능한 일을 정치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전략이 될 것으로 기대했고, 이 같은 기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더욱이 현 행정부의 전략은 후일 정치적 배당금까지 지불한다. E. 마크와 아이오아나 마리네스쿠의 연구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성장은 비교적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고, 이 같은 현상은 화석연료 추출 일자리 축소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잃은 건 무얼까? 안타깝게도 B.B.B.에 담겼던 자녀세금공제, 보편적 보육 지원 등 사회적 지출 가운데 상당부분이 깎였다. 미국의 의료보험 무보험자 비율을 기록적인 수준으로 떨어뜨려줄 건강보험 보조금 상향안이 포함되긴 했지만 사회적 지출이 삭감된 것은 뼈아픈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기후변화 관련공약을 거의 온전하게 지켜냈다.
이에 대해 우파는 어떤 비난을 하고 있나? I.R.A.가 중산층에 대한 큰 폭의 세금인상이라는 허튼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밋 롬니 부류의 공화당 의원들은 이번 법안을 지난해에 나온 ‘미국인 구조계획’과 한 묶음으로 묶으려든다. 당시 이들은 미국인 구조계획이 고도 인플레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런 주장이 사실인지 괘념치 말라.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재빠른 계산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향후 10년간 5,000억 달러 이하의 지출을 요구한다. 이에 비해 미국인 구조계획은 예산적자 축소와 함께 단일 연도에 1조9,000억 달러 지출을 골자로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독립적인 분석전문가들은 해당 법안이 물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지출규모가 대단히 크지 않다면 어떻게 이처럼 큰 임팩트를 낼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 일종의 변곡점 위에 앉아있다는 것이 대답이다. 재생에너지 기술은 혁명적인 전진을 이루었고, 재생에너지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화석연료보다 가격이 낮다. 지금 그린 경제로의 전환에 필요한 것은 뒤를 밀어줄 온건한 공공정책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바로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럼에도 공화당 상원의원 전원이 I.R.A.에 반대표를 던진 이유가 무얼까? 그들 모두가 계산을 하지 못하는 숫자 치는 아니다. 예를 들어 롬니는 그가 허튼 소리를 하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 게다가 이념차이를 소환하는 것도 쉽지 않다. I.R.A.의 기후 지원은 대체로 세금 공제에 의존하는데 공화당 역시 도널드 트럼프의 2017년 세금감면 당시 기회특구와 같은 사회적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금공제를 활용했다.
우리는 지금 거의 틀림없는 보복 정치를 목격하고 있다. 공화당 상원의원 전원은 단지 바이든 행정부의 승리를 막기 위해 기후참사를 피하기 위한 최상의 기회를 기꺼이 말살하려든다.
희소식은 그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법안이 통과됐다는 사실이다. 그 덕분에 세상은 일주일 전에 비해 훨씬 희망찬 곳이 되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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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