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식당에 가려고 집에서 나와 큰길 쪽 골목으로 핸들을 꺾었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섬광이 번쩍이더니 큰 번개가 쳤다. 찰나였다. 이어진 천둥소리도 요란했다. 얼마나 가깝게 느껴지던지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젖혔다. 멀리서 치는 번개는 보았어도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돌아올 때 보니 소방차가 와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골목에 서서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차를 돌려 가 보았다. 세상에, 우리 집에서 가까운 집에 번개가 쳐서 불이 난 거였다. 우리 집이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렸다. 시간상으로 볼 때 우리가 보았던 그 번개의 짓이 틀림없었다. 화재는 진압했는데, 고가 사다리는 여전히 지붕에 걸쳐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소방차까지 왔다 갔으니 로컬 뉴스에 나오겠구나 싶어 텔레비전을 틀어봤는데, 아무 데도 나오지 않았다. 커뮤니티 페이스북에 주민들이 올린 사진과 위로의 글이 전부였다. 한국 아저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뉴스에 나오면 나중에 집 팔 때 문제가 되니 쉬쉬하는 거라고.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은 그렇게 묻혔고 운동 삼아 동네를 걷는 주민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씩씩하게 그 집 앞을 지나갔다.
하늘이 꾸물꾸물하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요즘 들어 이런 비가 몇 번 내렸다. 짧은 시간에 퍼부은 비가 폭염으로 마른 땅을 적셔주었다. 차고 문을 활짝 열고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 물 빠짐이 시원찮은 동네라 길 가장자리에 금방 물이 찼다. 차 한 대만 지나가도 도랑물처럼 출렁거렸다. 속이 시끄러워서 맨발로 물을 밟으며 걸었다. 찰방찰방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빗소리가 좋았다. 비가 전 세계에 골고루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적당히. 어느 곳은 비가 안 와서 난리고 어느 곳은 비가 너무 와서 난리이니 하늘의 뜻을 알 길이 없다.
요 며칠 폭우로 인한 고국의 국가재난 사태를 뉴스로 살피며 몹시 심란했다. 듣기만 해도 무서운 말들이 심중에 떠다녔다. 집중호우, 산사태 위기 경보, 무너져내린 토사, 고립, 신림동 반지하 4가족 사망, 자연재해, 유실, 침수. 물에 잠긴 자동차…. 하나가 되어 위기를 극복하고 어려움당한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지 먼저 고민했으면 좋겠는데, 그 와중에도 싸우는 정치인들 모습이 마음 아팠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가 복구되기도 전에 다음 주에 큰비가 올 가능성이 있다니 걱정이 앞선다.
자연재해만큼 무서운 게 또 있을까. 물의 공포를 느껴본 적 있다. 미국에 첫발을 들이면서 시부모님으로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건 “미국에서는 사람이 돈이다, 식구대로 나가 돈을 벌어야 금방 일어선다”라는 말이었다. 내가 사람인지, 돈버는 기계인지도 모른 채 살았다. 교회 집사님이 타던 차를 헐값에 주셨다. 신호등 앞에만 서면 시동이 꺼지고 다시 켜려면 엑셀을 몇 번 밟으며 자동차 키를 돌려야 간신히 시동이 걸리는 위험한 차였다. 아메리칸드림은 드림일 뿐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해 어마어마한 허리케인이 왔다. 도매단지에서 방귀깨나 뀌는 양반이 가게마다 다니며 위험한 상황이니 문 닫고 얼른 집에 가라고 했다. 라디오에서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오는데도 젊은 유학생 부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건 정리를 시켰다. 매장 문을 닫는 시간이 되어서야 퇴근을 지시했다. 나와보니 하늘은 새카맣고 장대비는 방향도 없이 사방에서 몰아치고 세찬 바람에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도로는 물에 잠겨 중간에 있는 잔디밭이 보이지 않았다. 경사진 파킹랏을 내려와 도로에 닿는 순간 바퀴가 물에 잠겼다. 길의 경계는 없고 물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다.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면 파도치듯 물이 철썩철썩 차 문을 쳤다. 윈도우 브러쉬마저 고장 나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속도를 유지하며 엑셀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서는 순간 시동은 꺼지고 물속에 갇혀 죽을 거라는 공포가 밀려왔다. 앞뚜껑에서 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 수도, 차에서 내릴 수도 없었다. 사위는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처럼 절박하게 하나님을 불렀던 적은 없었다. 10마일로 움직여 물이 없는 큰 도로에 올라서서 내가 건너온 긴 강을 돌아보았다. 얼마나 서럽던지 장대비를 맞고 서서 한없이 울었다. 나는 살아왔고, 사장 부부는 새 차에 물이 들어가 길에 서 있다며 라이드 부탁 전화를 했다. 아버님이 뭐라고 퍼부었든지 내 알 바 아니었다. 그길로 쓰러져 몇 날을 앓았고 다시 볼 일은 없었으니까.
비가 멎으니 메밀잠자리들이 날아다닌다며 천안에 사는 지인이 카톡을 보내왔다. 온 산이 불에 타도 살아남는 게 있고, 물난리 속에서도 살아남는 게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살아남아 질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젠 젖은 날개를 털고 가벼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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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