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문가 에세이] 커피 없인 못살아

2022-08-11 (목)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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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커피가 좋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부스스한 채 커피 머신을 향해 직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2015) 커피를 전담했던 트레이시 앨런은 세계 최고의 커피 심사위원이자 미국전문커피협회 CEO다. 방문 6개월 전, 바티칸은 앨런에게 조심스레 연락을 취했다. “당신의 명성을 람보기니 패밀리로부터 들었습니다. 교황님을 위해 커피를 맡아주시겠습니까?” 앨런은 이전에 람보기니 회장단과 기업의 전속 커피전문가로 이탈리아에 거주했었다. 바티칸의 요청을 받아들인 앨런은 자비로 60파운드의 최고급 커피빈을 오더하고 수개월 간 쉬지 않고 커피를 연습한다.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장인의 일과는 로스팅, 컵핑, ‘올해의 최고커피’를 고르느라 조용한 분주함이 이어진다.

지난 달 열렸던 ‘올해의 최고 커피’(Cup of Excellency) 대회에서는 엘살바도르 루스코니 농장에서 수확한 커피가 92점, 최고점수의 영예를 안았다. 케냐,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등지의 농장에서 출품한 커피 가운데 10위 안에 들면 전 세계 커피상인들의 관심을 받고 경매에 부쳐진다. 품질평가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업계 표준에 따른다. 무역업자뿐만 아니라 동네 카페의 바리스타도, 농장주도, 로스터들도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된 커피를 가지고 소통한다. 그래서 나 같은 쫄개 커피 중독자도 동일한 기준 안에서 커피를 고르고 마시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매일 수십 개의 커피 샘플을 맛본다. 커피 그라인더 하나로 알뜰살뜰 계속 사용하는 건 무식한 짓이다. 방금 전 갈아낸 커피와 맛이 섞일 테니까. 한 모금 삼켜 입안에서 굴린 뒤 꿀꺽은 안 된다. 바로 뱉어내고 입안을 헹구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커피를 맛볼 테지. 일단 콧구멍을 최대한 벌름거려 향기를 맡는다. 마실 땐 체면 불구 후루루룩 소리 내어 마시기. 얌전히 입술 적시기는 금물이다. 그래야 입 전체에 퍼지는 단맛, 신맛, 바디감, 나중에 남는 맛 등을 감각하고 입안에 다가오는 무게감을 제대로 느낀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나는 커피를 배운지 5년 밖에 안 된 초보이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땐 동료들끼리 사다리를 타서 꼴찌가 종이컵에 받아오는 500원짜리 커피를 마셨는데 그때도 행복했었다. 미국에 오니 웨이터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운 머그에 넘치도록 그득히 따라준다. 크림을 섞어 알맞게 간을 맞춰놓으면 어느새 웨이터가 다가와 다시금 리필. 구수하지만 닝닝한 아메리카노다. 이것도 맛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쁜 친구의 꼬임에 빠져서 에스프레소 머신의 세계로 잘못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커피 만들어줄까?” 친구네 집에 처음 놀러간 날, ‘블루 보틀 커피스쿨’ 출신의 친구에게서 커피를 얻어 마시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캐비닛에 진열된 커피빈 가운데 로스팅한지 3일 이내의 커피 빈을 고르느라 10분. 위이잉~ 커피먼지를 일으키는 전동 대신 수동식 그라인더에 커피빈을 약 120알갱이 세어 넣느라고 10분. 주물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식히느라, 레버식 핸드프레스 명품 ‘라 빠보니’ 머신에서 스팀을 만들어 올리느라 등등…. 마침내 완성된 에스프레소 한잔. 그것은 예술 작품처럼 나의 눈과 코, 입과 소울을 매혹시켰고 신선한 커피 위에 0.2인치 두께로 떠있는 황금색의 끄레마는 감각을 홀렸다.

정신의학에서 분류한 카페인 중독 증상은 안절부절, 신경과민, 흥분, 불면, 횡설수설 등 12가지. 그러나 이미 발이 빠졌으니 어쩐담. 난 오늘도 상담실에 찾아온 클라이언트들에게 묻는다. “커피 만들어 드릴까요?”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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