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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칼럼] 지구를 구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2022-08-10 (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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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섣부른 기대와 무너진 희망 사이를 오가며 지난 2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부화하기도 전에 미리 병아리 수부터 세는 성급한 셈법을 꺼리게 됐다. 중요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해도 대통령의 확실한 재가 신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다. 하지만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라는 또 하나의 주요 법안을 처리하기로 내부의견을 정한 것은 그야말로 ‘대박’ 사건이다.

먼저 따져보아야할 것은 법을 이용한 물가 제어가 과연 가능한지 여부다.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인플레이션 자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물가상승압박을 덜어낼 수는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청정에너지분야와 의료부분에 정부 지원과 세제혜택을 확대하면 물가상승에 따른 소비자 부담이 상당부분 상쇄될 것이다. 결국 이 법은 적자삭감법과 마찬가지로 다른 조건이 동일하게 유지될 경우 물가억제 효과를 내게 된다.

아마도 소비자들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국가 방위력 강화에 다소 이바지했지만 그보다 미국의 미래에 대한 투자로 나라 전체에 큰 혜택을 주었던 1956년의 ‘전국 주간고속도로법’처럼 작동하길 원할 것이다. 필자는 이 법안이 반드시 그 이상의 효과를 낼 것으로 확신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이 이처럼 큰 기대를 낳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선 기후변화와 관련한 민주당의 마지막 입법시도였던 2009 왁스먼-마키 법안이 상원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된 이후의 상황변화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왁스먼-마키 법안의 핵심은 탄소세와 유사한 ‘제한과 교환’ 시스템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탄소배출을 축소하는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이 같은 시스템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이 법안은 일반 근로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쓰레기 같은 계획처럼 그려지기 십상이다.

왁스먼-마키의 실패로 오바마 행정부는 그린에너지 세제혜택, 재생에너지 기업의 대출 보증 등 채찍보다 당근에 의존하는 훨씬 제한적인 아젠다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 정도의 조치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당시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기후재앙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재생에너지 기술이 혁명적인 진전을 이루었는데, 이건 순전히 오바마 행정부시절의 정책에 힘입은 것이었다. 2009년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풍력발전은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갔고, 태양광 발전 경비는 풍력발전비보다 비쌌다. 그러나 그 이후 10년 사이에 풍력 발전비용은 70%, 태양광발전비용은 89%나 떨어졌다. 여기에 배터리 가격까지 급락하면서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로 얻은 전력을 이용해 건물의 냉난방 시설을 가동하고, 공장을 돌리며 자동차를 굴리는 등 그 누구의 희생도 강요하지 않은 채 탄소배출량을 극적으로 줄이는 경제의 밑그림을 그리는 게 가능해졌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담긴 기후관련 부분은 대체로 전기차를 포함한 저탄소 배출 기술을 채택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세금공제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고,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건물을 짓는 등의 방식으로 전반적인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데 방점이 찍혀있다.

이런 조치들이 큰 효과를 낼 것이라 확신할만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 이미 오랫동안 사용해온 화석연료와 달리 재생에너지는 학습효과가 가파른 ‘유아 산업’에 해당한다. 재생에너지 기술을 사용하면 할수록 이들에 대한 접근이 수월해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 청정에너지에 제공하는 인센티브는 머지않은 장래에 이들의 가격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전기자동차에 대한 지원 역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순환논리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현재 운전자들이 전기차 사용을 꺼리는 이유는 충전소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들은 아직까지 전기 차량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충전소 신설을 망설인다.

요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담긴 기후변화와 에너지 관련 지출은 향후 10년간 약 3,700억 달러 정도로, 같은 기간 예상되는 국내총생산의 약 0.1%에 불과하지만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게다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는 기후정책 셈법 역시 바꿀 수 있다. 수년 동안 환경보호론자들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은 부담이 아닌 기회로 간주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전환이 지구를 구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성공사례의 뒷받침이 없다면 일반인들의 이해를 구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제 아무리 심각한 기후정책이라도 현실이 아닌 제안인 이상, 우파들은 이를 미국적 생활방식의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사악한 계획으로 그럴싸하게 묘사해가며 무차별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기후조치의 현실적인 효과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이런 근거없는 공격은 먹히지 않는다. (우파가 관련법안의 처리를 막으려 기를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당이 이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아마도 머지않은 미래에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법안이 막판에 암초에 걸리지 않기를 기대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기후변화 행동론자들이 원하는 모든 처방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내딛는 거대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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