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법률 칼럼] 레드 플래그 법

2022-08-09 (화)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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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역이 연이은 대형 총기사건으로 신음하고 있다. 지난 5월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이 숨진 텍사스 유발디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과 10명이 숨진 뉴욕주 버펄로 수퍼마켓 총기참사, 이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일리노이주 시카고 인근 하이랜드 파크에서 독립기념일 퍼레이드 도중 총기사고가 발생하여 7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올해 6월까지 4명 이상 사상자가 발생한 2022년 총기사건만 무려 357건에 이른다고 미국 비영리 연구단체 총기폭력아카이브(GVA)가 밝혔다.

이 같은 참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23일 “총기 소유를 허가받은 일반인이 집 밖에서 권총을 소지하려면 총기 소지가 자기 방어를 위해 필요하다는 적정한 이유를 소명하고 사전 면허를 받아야 한다”는 뉴욕주법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법은 20세기 초 뉴욕시에서 마피아 조직 등의 총기난사 사건이 잇따르자 제정된 것이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깊이 실망했다”고 즉각 성명을 발표한 바이든 대통령은 판결 이틀 뒤인 6월25일 초당적 지지로 상하원을 통과한 총기규제법에 서명함으로써 대법원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다. 새 총기규제법은 18~21세 연령대의 총기 구매자에 대한 개인 신원조회를 확대하고 총기 판매업자들에게 신원조회 의무 확대, 총기 밀매 처벌강화, 레드 플래그 법(Red Flag Law)을 시행하는 주에는 장려금을 지급토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중 다소 생소해 보이는 레드플래그법에 대해 소개하자면, 본래 명칭은 ‘극단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명령’(Extreme Risk Protection Order, ERPO)으로 이미 캘리포니아(2016년)와 이번 사고가 발생한 일리노이(2019년), 뉴욕(2019년) 등 19개 주에서 입법,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의 골자는 법원의 심사를 통해 총으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위험성이 높은 사람들의 총기 구입과 소지를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이 아내에게 위협을 가한 경우 아내는 ERPO를 통해 남편이 총기를 구입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신청할 수 있고, 남편이 이미 적법하게 총기를 소지하고 있더라도 정부가 일시적으로 총기를 압수할 수 있다. 아내 외 가족 구성원이나 룸메이트, 교직원,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도 신청 가능하다. 사건 담당 경찰관이나 담당 검사는 남편이 총기를 사용할 극단적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법원에 의무적으로 ERPO 신청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ERPO에 따라 정서 불안자에게 총기 접근을 일시적으로 금지시킨다고 하더라도 법원의 접근금지명령과는 다르기 때문에 아내가 이를 통해 직접적인 보호를 받을 수는 없다. 또, 이 명령은 민사 분야이기 때문에 아무리 그 남편이 형사사건에서 무죄로 풀려나게 되더라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일정기간 총기 구입과 소지가 금지되는 것은 변함이 없다.

레드플래그법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관계로 그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각종 연구가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의 통계에 의하면 총기 자살이 7.5~13.7% 정도 감소했으며,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2016년~2018년 3년 동안 58건의 총기 난사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총기규제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모든 총기 거래자에 대한 신원조사 의무화를 비롯 공격용 총기와 대용량 탄창 금지 등 민주당과 총기규제 옹호단체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핵심 조항은 공화당의 반대로 모두 빠져 별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초당적 여야 합의로 레드플래그법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포함된 것은 다행으로 레드플래그법이 더 많은 주로 확대되어 총기사고 방지에 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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