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역사상 경제공황과 세계대전이란 두 가지 위기를 극복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대통령은 프렝클린D.루스벨트이었다. 미국경제와 국제적 위상을 새롭게 다지는데 뉴딜정책을 통해 회복시키며 사회복지와 노동자권리 보장에 중점을 둔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이것은 미국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오늘날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루스벨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리더로서 핵심 역할을 했다.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과 협력하여 전쟁초기의 갈등과 좌절을 딛고 승리로 이끌었다 그의 지도력은 세계강대국으로 입지를 강화했으며, 세계대전동안에는 연합군의 승리를 위해 전략적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는 1882년 미국 뉴욕의 유서 깊은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하바드대학을 졸업, 콜럼비아 로스쿨을 거친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1910년에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그러나 1921년 39세의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가 마비되어 이 시기에 고통과 좌절은 그의 인내심을 시험받아 불굴의 의지로 이를 극복했다. 더욱 강인한 정치인으로 거듭났으며, 대공황을 이겨내기 위한 뉴딜정책을 수립했다.
루스벨트는 1932년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어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취임연설에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었다. 세계대전에 중립을 유지하던 미국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전시경제 동원, 유럽 우선전략, 국제연합구상 등 연합작전으로 승리에 기여했다.
소아마비로 하반신 마비상태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정치적 부활을 감행했다. 그는 금수저 출신이라는 별호와는 달리 늘 서민의 편에서 라디오를 통한 ‘노변담화’ 로 대중과 소통 하며 부패를 척결하여 개혁적 명성을 쌓았다.
루스벨트는 미국역사상 유일하게 네 차례 대통령에 당선되어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중대한 위기 속에서 미국을 이끌었다. 그의 첫 승리는 1932년 대공황 와중에 이루어졌다.
뉴딜이라는 개혁구호아래 금융개혁, 농민구제, 사회보장제 도입 등을 공약으로 48개주 중 42개 주에 승리함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공황과 전쟁이라는 위기 속에서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미국역사상 유일하게 4선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제32대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루스벨트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역경을 극복하는 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그리고 국제협력의 중요성 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이다.
그의 유산은 단순히 역사책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의 삶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루스벨트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아마도 희망의 중요성일 것이다. 그는 미국이 가장 어두운 시기를 겪을 때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 희망을 바탕으로 나라를 재건했다. 오늘날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 했을 때 루스벨트의 이 정신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뉴딜정책들은 오늘날까지도 미국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유엔 창설의 주역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루스벨트가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마비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앞에 불굴의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다 프렝클린 루스벨트는 미국역사에서 조지 워싱톤,아브라함 링컨과 함께 3대 대통령으로 자주 회자된다. 경제위기와 세계대전을 동시에 이겨낸 지도자라는 점에서 그 어떤 대통령보다 극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평가 중 가장 큰 부분은 그의 대응 능력이다.
국민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불확실한 시대에 확고한 방향을 제시한 리더로서 미국민주주의를 지켰다. 또한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열었고, 국제사회의 협력체재를 마련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프렝클린 루스벨트는 단순한 정치인을 넘어 국가와 인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를 몸소 보여 준 인물이다. 그의 삶과 리더쉽은 오늘 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준다. 이 혼란의 시대에 과연 어떠한 지도자가 필요한지 루스벨트의 여정을 되 짚어보며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리더쉽에 대해 함께 애국충정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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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수필가ㆍ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