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요단상] AI와 동거, 그 실체

2025-12-19 (금) 12:00:00 김인자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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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깊은 초겨울 하늘에는 구름이 스쳐간 듯 엷은 아침 안개가 서려있다. 안개 속처럼 투명하지 않은 불안을 느끼는 요즈음이다. 시간 맞추어 태엽을 감아야지 돌아가는 옛 스위스 시게처럼, 고전의 가치체계를 천천히 스텝을 밟아가면서 새로운 문명을 따라온 우리에게는, 현재 폭포로 쏟아지는 AI 물결을 따라갈 지혜는 있는 걸까 생각해본다.

AI가 품은 만능의 지식은 20세기 까지 내려온 논리학, 철학, 언어학, 그리고 인간이 남긴 방대한 기록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역사를 거슬러 모두 인간으로부터 나온 현재까지의 지식의 총체인 AI를 외계인처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AI는 인간의 질문에 종합적인 답을 잘 만들어내지만, 인간처럼 그것의 원인과 결과에 왜(?)라는 질문을 아예 품지 못한다. 말하자면 AI는 인간 바깥에서 온 존재가아니라, 인간의 사유가 남긴 흔적을 빠르게 조합하는 거울에 가깝다. 그러므로 인간처럼 고통을 살아낸 경험, 상실을 견디는 시간, 침묵 속에서 의미를 기다리는 인내 등, 깊은 마음은 여전히 인간만의 몫이다.


우리는 지금 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순간을 건너고 있다. 놀라운 것은 기술의 속도보다 준비 없이 그 속도를 대처해야하는 우리의 입장인 것이다. 갑자기 닥친 만능의 능력 앞에서 그들을 어떻게 조정하고 지탱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현대기술의 변화속도에서 우리는 압도감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신경이 감당하는 속도보다 빠른 변화를 따라잡아야하는 현실에서, 만성적인 피로와 불안에 젖게 된다. 또한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위화감과 좌절을 느끼게도 된다. 이런 심리는 우리가 경험했듯이,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문명 전환기에 일어나는 보편적 감정’일 것이다. 이런 불안은 우리가 변화의 시대를 통과할 때마다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진동이다.

구시대는 가고 새로운 것을 일상적으로 받아드려야 하는 이질감, 기술은 늘 가속하지만, 인간은 사유와 호흡 속에서 늘 뒤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가서야 겨우 자연스럽게 체질화된다. 우리는 그런 변화에 맞추어 자신을 재단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가능성을 따라가며 변화에 적응해야 할 것 같다. AI가 일상 깊숙이 들어오면서 우리는 묻게 된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판단이나 책임은 기계에 물을 수 없으며, 또한 AI의 편리함은 알지만 그것의 의미는 인간만이 아는 것이다. 결국 AI 는 총체지식의 백과사전이며 조립하고 답을 찾는 기술에 불과하다.

오늘의 우리는 AI가 확장한 만능의 세계 속에서 자신이 더 이상 중심이 아님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에, 역사가 증명하듯이, 또 다른 새로운 기술을 정복하고 조절한다면, 예상하지 못한 찬란한 문화가 생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항상 질문하는 인간으로 남는 한,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먼 후일 AI 이후 또 다른 세계가 나타난다면?

<김인자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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