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타이베이101
2022-08-08 (월)
한기석 서울경제 논설위원
대만 수도인 타이베이에 가면 많은 관광객이 필수 코스로 찾는 마천루가 있다. 101층짜리 타이베이금융센터(타이베이101)는 2004년 완공되자마자 곧바로 세계 최고층 빌딩의 자리에 올랐다. 높이가 무려 508m로 그 전까지 1위였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보다 57m 높다. 타이베이101은 2010년 아랍에미리트 부르즈할리파(828m)에 자리를 물려주기까지 6년 동안 최고층 권좌에 머물렀다. 세계 최고층 경쟁을 벌인 세 빌딩은 모두 삼성물산이 시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타이베이101의 경우 골조 공사는 다른 건설회사가 하고 마감 공사를 삼성물산이 했다. 발주처가 당시 최고층 건물인 페트로나스 타워를 건설한 삼성물산의 기술력을 인정해 특별히 요청했다고 한다.
대만은 태풍과 지진이 잦아 도시 번화가에 가도 초고층 건물을 보기 쉽지 않다. 타이베이101이 들어서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안전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후 대만에는 진도 6이 넘는 강진이 몇 차례 발생했지만 타이베이101은 그때마다 털끝만큼의 피해도 입지 않고 안전성을 입증했다. 안전을 떠받친 것은 이 건물 88층에 자리한 황금 구슬이다. 지름 5.5m, 무게 660톤의 거대한 이 진자는 천장에 매달려 건물이 흔들리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진동을 흡수한다. 타이베이101은 2011년 미국 녹색건축위원회(USGBC)로부터 녹색건물인증제도(LEED)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에너지 사용 효율을 일반 건축물에 비해 30% 높였고 빗물 재활용 설비로 매년 2만 8,000톤의 수자원을 절약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최근 대만을 방문했을 때 ‘민주주의 친구에게 감사’ 등 그를 환영하는 문구가 타이베이101의 벽면을 장식했다. 하지만 ‘대만해협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며 펠로시 의장의 방문을 환영하지 않는 여론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북아시아는 지금 미중 갈등으로 격랑 속에 빠져들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도록 자주국방 태세를 튼튼히 하면서 가치 동맹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한기석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