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감해진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지금 이 순간, 대다수의 정치관측통은 2020년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이른바 ‘큰 거짓말’(Big Lie)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증거는커녕 그럴싸한 해명조차 나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큰 거짓말이 그보다 더 큰 거짓말 안에 박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더 큰 거짓말이란 민주당이 미국을 파괴하려는 극렬 좌파에 의해 조종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거짓말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블루 아메리카’ 지역의 생활에 대한 왜곡된 견해에서 그럴싸한 증거를 뽑아낸다.
도시 엘리트들에게는 ‘진정한 미국’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비난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솔직히 대부분의 대도시 주민들은 지방과 소도시 거주자들의 삶이 어떤지 잘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이해의 결여가 동네 식당에 모여 앉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인터뷰 기사를 쏟아내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필자는 블루 아메리카에 대한 우익의 잘못된 인식이 위험할 정도로 깊고 광범위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정치적 측면부터 살펴보자. 중간선거 유세 현장을 취재한 워싱턴포스트의 데이브 웨이걸 기자에 따르면 상당수의 공화당 후보들은 민주당이 고의적으로 미국의 국가기반을 약화시키고, 그들의 ‘적’을 대상으로 폭력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이미 내전 상태라는 폭탄선언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후보가 예비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공화당의 기반지지층이 그들의 턱없는 주장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필자는 큰 거짓말을 받아들인 공화당 지지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서베이 결과를 살펴보고 싶다. 이들 중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자들이 좌익 극단주의자이자 사실상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믿는 공화당원이 몇 명이나 될까? 이와 함께 필자는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시위에 참여한 시위자들이 미국 대도시의 대부분을 파괴하고 약탈했다고 믿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고 싶다.
현실은 이렇다. 현대의 민주당은 온건 중도좌파 연합체다. 유럽의 사회민주당에 가깝지만 그보다 보수적이다. 한 가지 척도를 들이대 보자. 유력한 민주당 인사, 아니 구체적으로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 외국의 독재정권에 경의를 표시한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는가? 숱한 보수주의자들이 헝가리의 빅토 오르반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과 뚜렷이 대비되는 부분이다. 오르반은 최근 다른 유럽국가들이 비유럽인들과 ‘혼합’되고 있다고 비난하며 자신은 헝가리가 ‘혼혈인종’ 국가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선언했다.
국내 폭력 발생건수도 살펴보자. 반비방연맹(ADL)의 연구에 따르면 극단주의자들이 연루된 2012-2021년 사이의 살인사건 가운데 75%를 우파가 저질렀고, 좌파의 소행은 4%에 그쳤다.
마지막으로 BLM을 들여다보자. 사실 시위는 압도적으로 평화로웠다. 일부 방화와 약탈이 있었지만 재산피해 총액은 10억 달러에서 20억 달러 사이였다. 상당히 큰 액수처럼 들리지만 미국이 거대 국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눈높이를 잡아야 한다.
비교사례를 들어보자. 지난 4월, 텍사스 주지사인 그레그 에봇은 멕시코 접경지에서 일시적으로 보안검색을 강화하는 정치 쇼를 펼쳤고, 이로 인해 국경 통행량이 둔화되면서 영업에 차질이 빚어졌고 미국으로 반입될 야채가 상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규모는 총 40억 달러로 추산됐다. 불과 1주일도 안 되는 국경 검문강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100일 이상 계속된 대규모 BLM 시위에 따른 피해보다 컸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제시해도 공화당 유권자들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법집행당국을 대하는 해이해진 태도가 미국의 대도시를 위험한 지옥굴로 만들었다는 인식 역시 변하지 않을 것이다. 팬데믹 기간에 강력범죄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나 도시와 지방 사이의 증가율 차이는 없다. 최근 범죄율이 오르긴 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뉴욕시의 경우 올해 살인사건은 2021년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2021년 뉴욕시 살인사건 건수는 1990년에 비해 78%, 2001년에 비하면 25%가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블룸버그의 저스틴 폭스가 작성한 문서에 따르면 뉴욕은 미국의 소도시에 비해 훨씬 안전하다. 로스앤젤레스도 살인사건 발생률이 크게 떨어졌고, 범위를 캘리포니아 전체로 넓혀도 결과는 비슷하다. 필라델피아와 시카고 등 일부 도시의 살인사건 발생률은 1990년대 초반의 수준으로 돌아갔거나 증가했다. 그러나 그들은 큰 그림에서 볼 때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공화당 지지자들 가운데 이 같은 사실을 시인하는 사람이 있을까? 필자가 뉴욕시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지적할 때마다 “말도 안 된다”는 반박 메일이 쏟아져 들어온다.
유권자층의 절반은 나머지 절반이 실제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미국의 종말론적 버전을 신봉한다. 이같은 디스토피아 판타지가 정치 폭력과 민주주의 전복 시도로 연결될지 추측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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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